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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 비평] 신문에 휘둘린‘동북아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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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 비평] 신문에 휘둘린‘동북아 균형자’

입력
2005.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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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와 외교에서 언론의 영향력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서 시민에게 전달된다. 국가간의 외교 관계도 양국의 언론이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언론은 단순한 중간 전달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언론은 중요한 이슈를 나름대로 골라서 보도하고 나아가 이슈의 색깔과 방향까지 결정한다. 사람들은 뉴스 정보를 달리 얻을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크게 취급한 이슈는 대체로 중요한 사회문제가 된다. 또한 언론이 일정하게 이슈의 방향을 잡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그대로 따라간다. 때문에 언론은 정치와 외교를 만들어 나가는 주요 역할자의 하나로 주목을 받는다. 언론은 그래서 스스로 권력이 되는 함정에 빠져들곤 한다.

최근 논란이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왜 이처럼 큰 이슈가 되었는지 근원을 추적해 봤다. 거기에는 특정 신문사의 집요한 이슈 만들기 노력이 있었다. 나중에는 대통령의 말과 의도는 어느새 사라지고 한 신문사가 해석하고 주장하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인구에 회자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3월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 중간에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한과 책임을 다해 나가고자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졸업식 연설 중간에 배치한 하나의 단락이었으므로 애당초 외교전략 변화를 알리는 선언이나 구체적인 외교정책 발표를 의미할 수는 없었다. 동북아 균형자나 자주외교라는 용어도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 과정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언론들은 대통령의 언급을 외교적 구상이나 비전 차원으로 사실 보도를 하는 선에서 편집했다.

그러나 한 신문만은 달랐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은 다음날 1면과 사설에서 이 문제를 크게 다뤄 마치 대통령이 새로운 외교 독트린을 발표한 듯 착각이 들게 했다. 이슈의 방향도 노무현 정부가 "지난 50년간 한국이 생존기반으로 삼아온 한-미-일 3각 안보체제로부터 사실상 이탈한다"는 쪽으로 몰아갔다. 이 신문은 ‘국민과 함께 생각해야 할 대통령의 동맹관’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한민국의 안위와 4,800만 국민의 사생에 직결되는 기존 동맹의 파기나 이탈 여부는 대통령 한 사람의 판단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다"면서 짐짓 국민에게 호소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같은 날 같은 신문이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미 동맹을 깬다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동북아 주요 당사국이 다자안보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이고, 미국측에도 그런 긍정적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고 한 보도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헷갈린다.

그럼에도 이 신문은 평소 단골로 기고해 온 보수 인사들의 기고를 통해 동북아 균형자론을 잇따라 비판했다. 기고자들의 논조는 이 문제와 관련한 처음 사설의 주장과 용어가 거의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 신문은 또한 미국의 친한파 보수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함으로써 동북아 균형자론을 간접 공격했다.

이 신문의 주장의 핵심은 50년간 유지돼온 한미동맹이 한국 외교의 생존기반이라는 것이다.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강국의 정세변화에 부응한 다자 외교의 필요성에 관한 정부의 고민과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지지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자사의 입장에 매몰된 기사는 불공정 왜곡 보도에 해당한다. 이 신문은 어느새 보도가 아니라 정치를 하는 언론의 함정에 또다시 빠져들었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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