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불량주부’의 설정은 월화 드라마들 중 가장 작고 평범하다. 기억상실도 없고, 애꿎은 아이를 시한부 삶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부부간 역할 바꾸기는 뻔하다면 뻔한 소재다. 그러나 ‘불량주부’는 그 뻔한 설정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낸다. 부부가 서로 역할을 바꾸면서 새로운 환경에 처하고, 이로 인해 점점 변해가며 갈등과 이해를 반복한다. ‘불량주부’는 이런 변화의 과정을 일상의 디테일을 파고 들며 실감나게 그려낸다.
수한(손창민)이 구청에서 요리강습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파트부녀회’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끼는 동안, 미나(신애라)는 직장상사와 친해지는 법을 익히고 월급날이 되자 자신의 옷과 남편의 구두 중 무엇을 살지 갈등하는 ‘가장’이 되어간다. 덕분에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만, 새로운 일이 주는 스트레스에 지치고,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수한이 미나 몰래 단돈 몇 만원을 숨겼다는 이유로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등 부부생활이란 늘 작은 일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스펙터클’한 일상의 모음이다.
‘불량주부’는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이 독특한 설정이나 사건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활의 발견’을 통해 작은 일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특히 수한과 유진(유민)의 관계를 ‘불륜’으로 만드는 대신 주변정리에 대해 거의 강박적인 유진의 캐릭터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어낸 뒤, 그것이 애정 없는 결혼생활의 결과임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채워주는 수한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끌어내는 자연스러운 전개는 탁월하다.
그러나 일상에 대한 섬세함은 ‘불량주부’의 한계이기도하다. 수한과 미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는 그들의 변화나 주변 사람들과의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새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드라마는 정체된다. 일상의 변화 뒤 찾아오는 일상의 반복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일하다가 전기에 감전되는 식으로 수한이 벌이는 해프닝을 반복하고, 미나와 기획실장의 관계를 마치 재벌 2세와 평범한 여성같은 모습으로 묘사해 조금씩 느슨하고 진부한 느낌을 준다.
일상에서 재미를 주면서도 정작 그 일상의 진지한 문제들을 메인 스토리로 내세울 수는 없는 드라마의 딜레마랄까. 그래서 ‘원더풀 라이프’같은 작품이 현실성은 거의 없지만 뚜렷한 설정으로 어쨌든 드라마를 끌고 간다면, ‘불량주부’는 일상에서 풍부한 에피소드를 이끌어내며 월화 드라마 중 가장 나은 재미를 주지만, 부부의 ‘현실’만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지는 못한 듯하다.
현실적인 공감과 드라마적인 재미의 균형점 찾기는 어려운 과제다. 요즘 월화 드라마가 어느 한 작품도 아주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