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다
부독본(副讀本)이 펼쳐져
한 페이지 속에
주먹만 한 바다가
멍이 든 잔등을 지고
엎어져
터진 자리마다
사금파리로
와그르르 와그르르
쓸어내지는 바다,
바다.
시를 산문과 가르는 가장 또렷한 형식적 기준은 음악성이다. 흔히 운율이라고 부르는 이 시적 특성은 낱낱의 작품마다 드러나는 정도가 다르지만, 그것을 완전히 배제한 시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자유시에도 내재율이라 불리는 잠재적 운율이 있다. 시가 산문에 견주어 외국어로 옮기기가 한결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 시와 산문을 각각 무용과 보행에 포개놓은 발레리의 유명한 비유도 결국 시 언어의 음악적 성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 점에서 한국어는, 이 언어 화자들이 굳게 믿고 있는 바와 달리, 시의 재료로 그리 무던한 자연언어가 아니다. 이 언어의 음운구조와 통사구조를 제어하는 규칙들은 너무 완고해, 음악적 아름다움을 향한 형태적 절차탁마를 흔히 헛일로 만든다.
전통 시가에서, 한국어의 운율은 음수율로 드러날 뿐이다. 그런데 이 음수율이라는 것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세련된 아름다움을 빚어내기 어렵다. 한국어 시가를 살필 때 더러 음보 개념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유럽어 시학의 개념을 한국어 시에 덧씌운 것일 따름이다. 소리의 장단, 강약, 고저에 그리 높은 값을 매기지 않는 언어로 쓰인 시에 음보를 들이대는 것은 일종의 과잉진료다. 한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은 유럽어나 중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과 달리 압운(라임)을 시도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컨대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에서 드러나는 음악으로서의 시는 한국어의 가능성 바깥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김영랑이 자신의 시적 재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베를렌의 모국어를 제 모국어로 삼았다면, "모든 예술의 상태는 음악에 가깝다"는 월터 페이터의 정식을 가장 찬란하게 증명했을지도 모른다.
운율은 운(라임)과 율(리듬)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음수율을 내버린 한국 현대시인은 율의 가능성을 고작 행갈이의 솜씨 있는 조작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이고,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운의 가능성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니, 시라는 것이 언어의 음악이라기보다 언어의 그림이라고 선언한 영미 이미지즘에 1930년대 한국 시인들 일부가 매료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시가 그림이라면, 그래서 굳이 운율이 도드라질 필요가 없다면, 한국어가 시의 재료로서 꿀릴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언어로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음악을 이해하는 것보다 되레 더 어려웠다. 그 이유의 하나는 시각이 청각보다 더 지적인, 더 능동적인 감각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으로서의 시는 서양에서나 한국에서나 그리 큰 물줄기를 이뤄내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살필 노향림(63)의 ‘눈이 오지 않는 나라’(1987년)는 그 작은 물줄기의 한 가닥이다.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 묶인 시들의 상당수는 말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일종의 전람회장이라고도 할 만하다. 이 전람회의 그림들은 유화보다는 수채화나 파스텔화에 가까워 화가의 감정을 짙게 드러내지 않는다. 시를 정념의 전시장이라고 생각하는 낭만적 독자들이라면 전람회 ‘눈이 오지 않는 나라’의 관람을 싱겁고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낭만적 시관(詩觀)은 사뭇 보편적인 것이고, 그것이 전람회 ‘눈이 오지 않는 나라’의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은, 더 나아가 시인 노향림의 독자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눈이 오지 않는 나라’의 시들이 과학논문이 아닌 다음에야, 거기서 화자의 정서가 말끔히 씻겨져 있을 수는 없다. 다만 그 정서들은 공들여 그린, 촘촘한 그림의 체로 밭아져 매우 묽게 드러날 뿐이다. 그렇게 드러난 정서는 대체로 스산하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자들은, 화가들은 마음이 아픈 듯하고, 어쩌면 몸이 아픈 듯도 하다.
전람회 ‘눈이 오지 않는 나라’를 둘러보는 즐거움은 그림 전체를 살핀 뒤 화가가 숨기고 싶어하는 마음의 상태를 읽어내는 것 못지않게, 그림들의 군데군데서 드러나는 화가의 뛰어난 소묘력을 관찰하는 데 있다. 예컨대 "새소리들이 쌀톨처럼/ 서쪽 하늘에 흩어졌다"(‘서쪽 하늘’)거나, "채찍을 휘두른다// 으윽--/ 허리 베어지는 달빛"(‘자연’), "빨갛게 언 햇볕들이 와서// 양탄자 속에// 녹아서 지워진다"(‘조간신문 읽기’), "궁둥이가 큰 어둠이/ 자리에서 삐걱이는 소리"(‘막간에서’), "풀밭 속에 다 낡은 샌들을 신고 산발한 달빛들이 늘 어른거렸다"(‘유년’) 같은 표현들은, 능숙한 공감각 기법이나 정곡을 찌르는 의인화와 유정화(有情化), 공간의 비틂을 통해, 어지간해서는 상투적이었을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만든다. "하늘이 내려왔다 솟아오른다// 푸드득 숨었던 새가 난다/ 새들에 의해 갑자기/ 하늘이 튕겨 오른다// 깔깔거리는 바람들이/ 몰려다니는 소리/ 간간이 살이 긁힌/ 바람도 섞여 있다"(‘숲’)라거나, "산밑의 길은 툭툭 끊기고/ 어디선가 소리들이 굴러내렸다/ 구르면서 소리들은 골짜기를 두드려 깨우고/ 등성이에 몰려있는 발없는 나무들을/ 모두 두드려 깨우고/ 다 내려와서는 흩어진 몸으로 온데간데 없어졌다"(소리 1)거나, "바람이/ 햇볕이/ 하늘에 기대어 쓰러져 있고/ 누가 그걸 일으켜 세우는지/ 서쪽으로 하얗게 삭아서 날이/ 저문다"(‘서쪽 하늘’) 같은 구절들도 그렇다. 이 묘사들은 매우 부분적인 예일 뿐,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는 노향림이 붓과 물감 대신 언어를 쓰는 화가임을, 그것도 매우 뛰어난 화가임을 보여주는 구절들이 즐비하다.
시장에 걸린 그림들에서 어설픈 터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둑 너머 샛강에는 준설기들이 문명을/ 퍼올리고 있었다"(‘바람 부는 날’) 같은 구절들에서는 박인환의 나쁜 시들이 보여주었던 언어의 속 빈 치장이 느껴지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하늘"(‘가을 영안실’) 같은 표현은 비유의 상투성에 너무 대범하다. 전람회의 표제로까지 선택된 작품 ‘눈이 오지 않는 나라’가 뜻밖에도 보여주듯, 화가의 터치가 난해한 것인지 서툰 것이지 알 수 없는 작품들도 더러 있다. 사실 난해한 것과 서툰 것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는 이른바 회화시 또는 그림시 일반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눈이 오지 않는 나라’를 포함한 20세기 이래의 회화시들은 시 장르의 정체성과 관련한 근본적 심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감정의 분출을 억제하고 오로지 외부 세계의 객관적 묘사를 통해 최소한의 정조만을 설핏 드러내는 것은 정신적 성숙의 징표랄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화자의 삶이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단지 풍경일 뿐인 말무더기가 과연 시의 본령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시의 화폭에 대체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전람회 ‘눈이 오지 않는 나라’에 내걸린 그림들에도, 이 그림들이 그려지던 시절 슬퍼하고 노여워하던 사람들, 굶주리고 얻어터지고 고문받고 짓밟히던 사람들이 거의, 사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그 반대편에 서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눈이 오지 않는 나라’의 작품 다수가 보여준 엄격한 이미지즘이 시의 본령에 속하느냐의 문제와는 별도로, 노향림이 한국 현대시사에서 썩 중요한 시인이라는 것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그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여류시인’이 아니라 ‘시인’이었던 첫 여성시인이다. 그것은 그가 언어에 대해 깊은 자의식을 지녔던 첫 여성시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를 재현하고 거기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의 힘을 믿었고, 그 재현과 의미화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언어를 공들여 벼려냈다. 그 언어는, 그 말은 "가끔/ 아파트 베란다에 걸터앉아/ 저녁해가 지는 것을 혼자/ 바라다보기도 하고 훌쩍/ 어둠 속 어디엔가 사라져/ 버린"(말 1)다. 그 말은 또 "은밀히 나를 결박하면서/ 껍질이 타고 무형의 뜻만 남아/ 온 하늘을 날아다닌"(말 2)다.
노향림의 시를 읽노라면 문득 그가, 농사밖에 모르는 사람이 농투성이라는 의미에서, 시밖에 모르는 ‘시투성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회화시가 뽐내는 주지주의적 세련미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세련미 때문에, 그의 시에서는 역설적으로 우직함, 고지식함이 느껴진다. 나는 방금 우직함, 고지식함이라는 말에 매우 긍정적인 함의를 담았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의 시가 많은 독자를 거느리긴 어렵겠지만, 그 소수의 독자들은 심미적 독립성을 지닌, 매우 진지한 독자들일 것이다.
객원논설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