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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국이냐 중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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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국이냐 중국이냐?

입력
2005.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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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교정책의 장기적 방향 설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이 미국 혹은 중국이라는 두 가지 선택권으로만 모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기존 동맹 관계의 틀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모색하는 의견은 쉽사리 ‘궤변’으로 폄하되곤 한다.

극단적 세계관의 표출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세계관은 외세의 지배와 전쟁 그리고 이념적 대립으로 얼룩진 우리의 근세사가 지고 있는 업보이다. 생존을 위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했던 민족의 골수에 새겨진 무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양극화된 논점은 한 사회의 이성적 논의와 건전한 비판 기능을 마비시켜 또 다른 극단적 결정을 유도하게 된다.

극단론자들에게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곧 한미동맹을 완전히 단절하고 한중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존의 안정된 틀이 무너지고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새로운 구조에 편입된다는 것은 곧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며 그러한 논의 자체만으로도 위험천만한 시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역학 관계를 조금만 긴 시각에서 보아도 이는 지극히 근시안적 발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을 바탕으로 형성된 냉전 시기 한미동맹 관계의 최우선 목적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서 대립의 종식과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기존의 ‘혈맹’ 관계는 기능적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 카드는 사실 미국이 먼저 들고 나왔다. 냉전 이후 미국은 동북아 정책의 기조를 중국의 팽장을 억제하는 데 두었고, 그러한 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도 중국 포위에 동참하라는 업그레이드된 동맹 관계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한미 간 불협화음도 냉전 시기의 소극적 군사동맹의 후원자로서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의 입장과, 한국이 중국 포위의 적극적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원하는 미국의 입장이 서로 맞부딪혀서 발생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한 군사동맹의 후원자라는 소극적 역할에만 머물러 있게 할 수 없다. 결국 선택의 길은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동참을 하거나 아니면 동북아의 정세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동맹 구도의 확보를 통하여 활로를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우리와 지리적·역사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정량적 지표로 보아도 이미 초강대국의 반열에 들었으며, 향후 동북아 지역에서의 현실적인 영향력은 결코 미국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중국을 포위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은 언제라도 필요에 따라 동북아 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 이번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 실패의 예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동맹구조의 재편에 대한 진지한 모색은 필연적이라고 하겠다. 명·청 전환기의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조선이 두 번이나 끔찍한 전란을 겪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합리적인 외교정책 결정은 우리를 둘러싼 국가군이 만들어내는 문명사의 구조적 변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그에 적응하는 장기적인 안목과 경륜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지구상에 존재하였던 작은 잠자리가 거대한 공룡과 달리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원인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몸을 적응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2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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