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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 '신작 2005' 독일 현지 프리뷰/ 거장의 무대서 만난 '한국' 더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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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 '신작 2005' 독일 현지 프리뷰/ 거장의 무대서 만난 '한국' 더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입력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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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현지 시간) 인구 37만 명의 독일 중서부 도시 부퍼탈. 현대 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쉬(65)의 새로운 작품 시연회가 있는 부퍼탈 샤우슈필하우스는 설렘 가득한 관객들의 발걸음으로 술렁거렸다.

15일 시작해 25일까지 9차례 있을 이번 시연회는 아직 제목도 정하지 않아 티켓에는 단지 ‘신작(Neues Stuck) 2005’으로 적었다. 시내 어디에도 공연과 관련된 포스터나 홍보물이 내걸리지 않았지만 2월15일 티켓 판매 시작 3일 만에 매진됐다. 745 좌석이 빈틈 없이 들어찬 극장에 들어서니 "피나 바우쉬가 안무하는 공연이 있으면 고속도로의 흐름이 바뀐다"는 현지인들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가를 만나기 위해 독일 각지에서 달려온 관객들은 마치 소풍 전날 밤의 어린아이마냥 들떠있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바우쉬의 ‘신작’은 1986년부터 시작한 ‘국가 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로마를 소재로 한 ‘빅토르’ 이후 세계의 여러 나라와 도시를 영감 삼아 독창적인 무용극을 만들어 온 바우쉬가 13번째로 선택한 곳은 한국. 97년 중국 반환을 기념해 홍콩을 다룬 ‘유리창 청소부’(Window Washer), 지난해 일본을 담아낸 ‘천지’에 이어 아시아 국가로는 세 번째다. 그는 지난해 10월28일 자신이 이끄는 ‘탄츠테아터 부퍼탈’ 단원15명과 함께 내한해 보름간 경복궁 압구정동 봉은사 등을 답사하고 파전 보리밥 등을 맛보며 한국을 탐구했다.

공연은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버무린 내용이었다. 막을 올린 것은 서구적인 웃음이었다. 마치 대화하듯이 휘파람을 주고 받는 두 무용수가 무대를 가로지르며 미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나 ‘어어부밴드’ 장영규가 작곡한 ‘잔디에 베인 나무’가 흐르면서 "입술이 떨리며 사라져 가네…" 가사에 맞춰 외로움에 떠는 무용수의 몸짓과 어우러졌다. 객석은 순간 깊은 정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어 김민기의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가 무대 위를 흐르고 가야금과 피리가 일렉트릭 기타 음과 만나면서 관객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가슴속 울림에 넋을 놓았다. 여성 무용수들이 배추 잎을 부채처럼 흔들며 군무(群舞)를 추기도 하고 김장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뒤를 이었다. 남자무용수는 짧게 독무(獨舞)로 살풀이 춤사위를 선보이기도 했다.

무대 뒤편을 장식한 흰 암벽 이미지도 한국을 담아내는 스크린 역할을 해냈다. 진달래가 활짝 핀 백록담이 펼쳐지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한국인들의 삶에 지친 무표정한 얼굴로 채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우쉬의 ‘신작’은 단지 한국적인 것으로 무대를 꾸미는 데 그치지않았다. 라이터로 종이 꽃을 불꽃으로 만들거나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동작을 선보이는 등 파격적인 실험들이 시도됐다. 무대의 몸들은 선율이 되고, 소리는 다시 동작이 됐다. 바우쉬는 고독과 유머를 대비시키면서 남녀간의 의사소통 부재를 강렬하고도 미학적으로 보여주었다.

도르트문트에서 온 바바라 게스페어씨는 "접점을 찾기 힘든 남녀 관계를 그린 작품으로 생각한다"며 "한국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적 표현의 강조는 자칫 강요가 되기 십상인데, 이날 공연은 한국적인 것을 굳이 생경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세계적이고도 보편적 감수성을 건드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LG아트센터와 피나 바우쉬 탄츠테아터 부퍼탈 주한독일문화원이 10억원을 들여 공동 제작한 바우쉬의 ‘신작’은 6월22~2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세계 초연되며, 내년 6월에는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공연문의는 (02)2005-0114

부퍼탈=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인터뷰/ "좋은 작품 완성해 한국 찾겠습니다"

작품 시연회가 끝나면 늘 부끄러워서 지인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피나 바우쉬. 그러나 이번에는 ‘신작’의 결과가 만족스러운 듯 예정에도 없이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3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의 말미를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좋은 작품을 완성해 한국을 찾겠다"는 약속으로 맺었다.

시연회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

"오늘 무대는 마치 오븐에서 막 꺼낸 빵과 같다. 조금씩 고쳐나갈 것이다. 완성된 작품은 아니지만 일단 무대에 올리고 나니 안도감이 느껴진다."

한국이 소재가 된 것을 알아채는 독일 관객이 많지 않은데

"한국적인 것을 많이 표현하려 했지만 관객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견해 취향 환상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한국의 강한 대비를 담아내기 쉽지 않았다."

한국 노래 가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극적 요소에 이용했는가

"음악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고 가사의 의미는 단원 김나영에게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 가사를 무용과 구체적으로 연결짓지 않았다."

다른 국가나 도시를 소재로 한 이전 작품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국에는 ‘빨리빨리’ 라는 말에 지친 사람이 많다고 느꼈다. 1979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0년에 다시 서울을 찾았는데 과연 이 곳이 내가 왔던 곳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 발전 뒤에는 한국사람의 강한 힘이 숨어 있는데 그것을 이번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부퍼탈=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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