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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화사(花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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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화사(花思)

입력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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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꽃비 내려 얼룩진 뜰을 쓸 것인가, 아니면 바라만 볼 것인가? 허공에 머물렀던 아름다움은 땅에 져도 아름답다. 저 같은 아름다움을 무심코 쓸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쓸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담아서 버릴 곳 또한 마땅치가 않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름다움을 장사 지낼 적당한 곳이 없다. 차라리 불어오는 바람에 맡기는 것이.

봄은 이렇듯 아쉽게 지나가고 있는데, 흩날리는 꽃만큼이나 허망한 인간들은 연초부터 왜 이리도 요란하고 살벌한지, 혹시 평화에 대한 권태 때문인가, 아니면 사이렌 소리에 대한 향수 때문인가? 무슨 깃발이 저들을 부르고 있는가?

꽃들이 남녘에서 먼저 피듯이, 영토에 대한 시비와 역사에 대한 망언이 일본으로부터 점차 북상해 올라오더니만, 어느 사이 한국을 거쳐 중국 전역에 까지 만발하고 있다.

독기어린 꽃들이 저마다 얼굴에 피어나면서 목소리마저 미움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이 꽃은 물이 아닌 사람의 피를 마시는 흡혈화로서, 불타는 그림자를 햇빛삼아 산소동화 작용을 하는 꽃이다. 아무래도 금년 봄이 심상치가 않다. 금년에 불어오는 황사 속에는 환경오염 외에도 과거에 대한 악몽이 첨가되어 있다. 유독한 황사는 만리장성을 넘어 섬 나라로 날아가고 있다. 여느 때처럼 무궁화 나라를 경유해서.

현실적인 이익이나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개인도 국가도 자신의 과거를 왜곡하기 쉽다. 가장 솔직하다는 자서전일수록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일본인들은 이웃들과 공유하는 역사를 갖기보다는 자신만의 역사를 갖기를 원한다. 존재하는 역사보다는 자기들이 소망하는 역사에 푹 빠져있다. 악몽을 꾸면 옆에서 흔들어 깨워야 한다. 그래도 안 깨면 저들이 무서워하는 지진을 일으켜서라도.

일본인들이 일으키는 군국주의의 계절풍과 한국인들마저 가담한 격렬한 감정의 황사 현상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일본은 걸핏하면 망언으로 한일관계의 찬물을 끼얹으니, 양국관계의 온도는 내려가기만 할 것이고, 계속 꽁꽁 얼어붙다 보면 살얼음은 얼음이 되어 그것을 딛고 건너오는 것은 아닐지? 지난해 뜨거웠던 한류(韓流)는 어느덧 차가운 한류(寒流)가 되어 현해탄에 부서지는데, 만발해 흩어지는 벚꽃 사이로 이상한 꽃들의 유령이 섬뜩하다. 동해 먼 바다에 독도의 연꽃이 아스라하다.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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