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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6) 종교학자 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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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6) 종교학자 정진홍

입력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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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저를 무척 불편하게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일은 저에게 어쩌면 잔인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불행히도 저는 아직 제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별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이른바 스스로 ‘학자’라고 여겨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교에서 일생을 보냈습니다. 이런 저런 글도 썼고 책도 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하는 일 빼놓고는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뿐 달리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드러낼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제 글이 참 ‘가난’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는데, 그래도 해야 한다면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조금은 절망적인 세월을 살면서 지낸 어렸을 적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다행하게 학교를 다니는 터에 공부를 잘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실은 그것도 내킨 일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남긴 상흔이 깊었던 탓이겠습니다만 저는 별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죽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분노,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불안한 내일들의 소용돌이를 살았었다고 겨우 지금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지는데, 공부를 잘하려 했지만 그리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늘 부럽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종교는 제게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종교는 제 삶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제 처지를, 제 조건을, 그리고 저 자신을 종교는 자기의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종교에의 심취, 비록 그것이 이른바 돈독한 신앙이었는지는 몰라도 저는 그 속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틈에 종교는 제게 절대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호흡하듯 기도를 했습니다.

참 고마운 충고들이 많았습니다. 선친을 따라 법대를 가든지, 아니면 의대를 가야 집안을 살릴 수 있다는 충고들은 지금 생각하면 마땅히 따랐어야 할 바른 말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추한 모습을 너무 일찍 ‘체험’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른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골똘했습니다. 대학에 간다면 죽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이나 마음껏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꿈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은 ‘읽어야 하는 책’들에 치여 읽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하고 싶은 것은 바른 생각 틀이라는 것을 따라야 하는 규칙 때문에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한 물음은 유치하고, 불순하고, 오만하고, 역모를 꿈꾸는 그러한 물음으로 단죄되곤 했습니다. 해답은 고사하고 물음조차 권위 있는 물음이 따로 있었습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무척 자유스럽지 못했습니다.

막연하지만 신학을 동경했었습니다. 죽음을 전제로 한 젊음이 마땅히 관심 가져야 할 것이 제 삶의 맥락에서는 그렇게 다듬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머물 수 없었습니다. ‘배운 물음’에 대한 ‘준비된 해답’을 되뇌는 것이 신학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신학에의 반역’이라고 해도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 자신이 스스로 정직하고 싶다는 ‘자존심’은 저를 신학에의 길을 버리고 종교학의 자리에 이르도록 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신심의 결여, 오만의 범람이 그 까닭이겠습니다만 저는 특정한 종교가 발언하는 배타적인 언어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종교는 초월이나 신비의 범주에 든 별개의 것이 아니라 지극한 일상이 담고 있는, 그러나 그렇게 범주화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삶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승인하면서 그렇다는 것을 애써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종교는 선택된 삶의 한 모습이지 규범적으로 과해지는 불가항력적인 필연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듬고 싶었습니다. 후자는 전자의 내재적 귀결이지 현상에 대한 서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그것 자체로 ‘스캔들’이었습니다. 그러한 태도로 이루어진 종교에 대한 관심, 곧 종교학이란 결과적으로 종교를 근원적으로 해체하려는 음흉한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거나 아니면 인식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해부하여 결국은 생명을 지닐 수 없는 것이게 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교학이라는 학문의 자리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제 물음을 정직하게 물을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한 듯했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도 종교학의 울을 뚜렷하게 금 긋지 못합니다. 아니, 현대를 살면서 특정한 학문의 울을 치며 각 영역주권을 주장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지, 아니면 그것이 가능한 것이기나 한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학의 마당에 들어서면서 저는 인식을 위한 기존의 범주가 고쳐지거나 폐기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기존의 개념들조차 얼마든지 새로 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글도 쓰고 싶었고, 발언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틈에 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었습니다.

즐겁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지닌 문제에 대한 반향(反響)을 경험해 나아가지 않으면 공부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공부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작업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문은 당연히 학문답기 위한 문법을 스스로 갖춰야 합니다. 공부하는 일은 상상만도 아니고 실증만도 아닙니다. 무척 낡은 주장일지 몰라도 무릇 학문은 불가피하게 사물과의 일정한 거리를 지녀야 하고, 그렇게 인지된 사실과 사물에 대한 분석적인 이해와 통합적인 판단을 빚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학문의 배후에는 학문의 논리에 다 담을 수 없는 비학문적인 실존적 모티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간과되거나 어떤 의미에서든 제거된 학문은 지적(知的) 유희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학문의 귀결은 학문 자체의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학문을 처음 충동한 실존적 물음에 대한 실천적 귀결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부하다 보니, 아니면 제 물음에 대한 반향을 좇다 보니, 그 일이 행복해지면서 이런 말씀을 감히 드리고 싶어집니다.

제가 살던 시골 마을을 들어서는 길목에는 개천이 흐르고 늙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전쟁이 심한 때였습니다. 매일 새벽이면 동네 아주머님 한 분이 그 앞에서 찬물을 떠놓고 비손을 하셨습니다. 애비 없이 자란 외아들이 전선에 나갔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 모습은 삶의 가장 아프면서도 따뜻한 정경으로 제 삶 속에 고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 아들은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종교를 통해 그 정경을 다시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부인의 행위가 지옥에 가야 마땅한 어리석은 또는 악마적인 짓이었다는 종교의 판단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인간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존이 허락할 수 없는 저주였습니다.

저는 종교를 제 삶의 유일한 출구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저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공부’를 의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비겁한 배신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사를 공부하면서 저는 종교가 한 번도 스스로 자신이 가르치고 선포하는 그 내용을 실천하거나 구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승인하지 않으면 종교에 대한 어떤 담론도 정직한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를 공부하는 일, 그것은 저에게 천형(天刑)과 다르지 않습니다. 믿으면 되는 일을 알려고 하는 일은 도무지 ‘효율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분명한데 그것을 피해 가는 것은 아무래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는 물음에 이제 겨우 제 자리에서 제 답변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정직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내 물음을 묻고, 내 대답을 추구하는 자유를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공부하는 까닭의 전부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러합니다.

● 정진홍 교수는…

외국의 종교학 이론을 소개하고 종교를 도구로 한국사회를 분석했으며 한국 특유의 편협한 종교현상을 비판하고 종교의 긍정적 가치를 알리는 일에 평생 헌신한 대표적 종교학자이다. 193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 무렵 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나 모든 종교의 가치를 인정한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미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명예교수로 학술원 회원이며 현재 한림대 과학원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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