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처음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18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각 오후11시30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시작됐다. 이에 앞서 52개국에서 모인 115명의 추기경들은 이날 오전 10시 성 베드로 성당에서 수천 명의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청 안팎에서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2,000년 역사를 지닌 가톨릭 교회가 개혁-보수의 갈림길에 섰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사를 집전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와 욕망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상대주의의 독재로 다가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언급은 기존의 교리를 수호할 인물을 교황으로 선출하도록 촉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우리를 이끌 목자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기도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추기경들은 오찬에 이어 오후 4시30분 시스티나 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교황선출 작업에 들어갔다. 신자 수천 명은 시스티나 성당 주변에 모여 흰 연기가 올라오기를 기대하며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콘클라베 첫날인 이날은 오후에 한 차례 투표만 실시됐다. 그러나 19일부터는 매일 아침 7시30분 숙소인 산타 마르타 호텔에서 예배를 올린 후 9시까지 성당으로 이동, 오전 중 두 차례의 투표를 마치고 오후 4시부터 또다시 두 차례의 투표를 하는 반복된 과정을 밟게 된다. 하루 총 4차례 진행되는 투표는 추기경단 115명 중 3분의 2인 77표를 한 후보자가 확보될 때까지 진행된다.
교황청은 "투표가 시작되면 매일 정오와 오후 7시 두 차례 시스티나 성당 굴뚝을 통해 교황 선출 여부를 알릴 것"이라며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 오르면 40여분이 지난 후 새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 첫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밝혔다.
265대 교황을 뽑는 이번 콘클라베는 교황청 궁내원장이 지휘하고 추기경단에서 차출된 3명이 검표관을 맡는다. 추기경들은 ‘나는 교황으로 000를 선출한다’는 글귀가 적힌 투표 용지에 차기 교황의 이름을 쓴 후 제단 위의 항아리에 투표 용지를 넣으면 바로 개표가 이뤄진다.
로이터통신은 "콘클라베가 시작된 후 평균 3일이면 교황이 선출됐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언론도 늦어도 21일까지는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라칭거 대세론’ 역풍/ 나치 청년단 전력 불거져 "최소한 킹메이커" 분석도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78) 추기경이 차기 교황으로 급부상하자 그에 대한 자격논란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오른팔’로서 보수파를 응집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최근 나치 전력이 또다시 불거지는 등 역풍도 만만치 않다. 낙태 이혼 피임 안락사 여성 사제서품 등에 대해 강력한 보수주의로 일관하는 그는 교회분권보다는 교황청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신들은 라칭거 추기경이 1941년 나치의 청년 조직인 ‘유겐트’에 가입하는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몸을 담았다는 것을 다시 부각하고 있다. 인권유린과 잔혹행위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연루 자체가 적잖은 파장이다. 나치에 협력하는 항공기 엔진 군수공장에 배치된 경험을 갖고 있는 그는 당시 공개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 지 미지수다.
진보파는 라칭거 추기경이 전체 115표 중 절반이 넘는 60표를 확보하고 있다고 공언함으로써 반대파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이들의 결속력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막상 투표가 시작되면 이탈리아 출신의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라칭거 대세론이 여전하다. 뉴욕타임스는 17일 "그는 누구보다도 새 교황을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며 "차기 교황은 그의 축복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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