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투자의 전설’이자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은 매년 자신이 운영하는 투자지주회사 버크셔 헤셔웨이 주주총회를 전후해 주주들에게 지난 해의 성과를 보고하고 올해 경제전망과 투자전략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오마하는 그가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살고있는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도시. 월가의 양심이자 가치투자의 달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 편지는 ‘세계 최고의 경영교과서’로 알려져 전 세계 투자자와 기업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쭦 2월28일자로 공개된 올해 편지에서 그는 달러약세 예측에 따른 통화분산 투자로 돈을 좀 벌었지만 전반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해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히고 ‘위험 분산, 비용 관리’를 올해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하지만 나이(74세) 탓인가, 빌 게이츠에 이은 세계 2위(440억달러) 부자인 그의 이번 메시지는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자회사 CEO들에게 "기업을 당신 집안이 앞으로 100년간 소유할 유일한 자산인 것처럼 이끌어라"며 보수적 윤리경영을 강조해왔는데 그 한 군데서 사고를 쳤으니 그럴 법도 하다.
쭦 버핏은 11일 버크셔 계열회사인 제너럴 리와 세계 최대 보험사 AIG와의 재보험상품 변칙거래 의혹으로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5억달러의 돈이 오간 복잡한 거래에 대해 AIG는 이미 부적절했음을 시인했다. ‘세계 보험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하던 모리스 그린버그 AIG 회장이 즉각 CEO자리에서 물러날 정도로 사정당국의 추적도 집요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월가에선 "수십년 동안 살아있던 전설들이 2005년에 모두 ‘죽은 신화’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무성하다.
쭦 문제가 불거진 1월 버핏은 "버크셔는 돈을 잃을 여유는 있어도 명성을 잃을 여유는 없다"고 큰 소리쳤지만 참고인으로 5시간 이상 조사받은 후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진술했다"고 자세를 낮췄다. 월가 일각에서는 이번 조사가 버핏이 지난 대선 때 조지 W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 거액을 기부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그렇다고 해도 1999년 말 신경제의 거품을 경고한 통찰력과 2001년 엔론 등의 분식회계 소용돌이로 더욱 부각된 윤리성은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품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세상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