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군청, 시청, 법원, 검찰청, 경찰청, 문예회관, 문화회관, 박물관, 공공도서관, 의회 건물, 여러 종류의 행정 청사들. 관공서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 종류들이다. 공무원 양식이라고도 불린다. 관에서 발주하는 건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비꼬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기도 하다. 공무원이나 관청과 관련하여 널리 퍼져있는 부정적 이미지가 깔려있다. 예술성이나 작품의 질로 승부하려는 건축가들의 공포심과 분노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관 발주 공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웬만한 시군구는 관청-의회건물-문예회관-박물관-도서관 등으로 구성되는 관청건물들을 세트로 갖추어가고 있다. 이런 건물들은 건축가들의 설계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IMF 때나 최근의 불황에도 관급 공사는 꾸준히 증가하면서 설계시장을 지탱한 버팀목 구실을 했다. 관급 공사는 또한 설계비 떼일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안전한 프로젝트이다.
관급 공사는 양적인 측면 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건축가들에게는 중요한 기회이다. 자신의 창작력을 관청 건물을 통해 많은 국민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장이다. 사적 영역의 건물은 사용자가 제한적인 반면 공공건물은 모든 계층의 국민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에게는 좁은 엘리트주의를 벗어나 대다수 국민들과 어울리는 국민양식을 창조할 수 있는 좋은 장이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공공건물은 한 시대와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작이 나오기에 좋은 유형이다.
우리나라는 공공건물에 걸작이 없다. 국회의사당을 필두로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전쟁기념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모두가 똑같은 분위기의 똑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다. 전문가 그룹에게는 모두 비판의 대상이었고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고 그런 관청건물의 연장으로 비쳐질 뿐이다. 구청이나 군청 등의 행정관청 건물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결같이 완고한 노인이나 권위적인 공무원을 닮은 모습들이다. 지자체별로 핵심 요지에 가장 큰 덩치로 세워진 건물이고, 국민들과 가장 친밀한 접촉이 일어나야 하는 건물이건만, 가장 꺼림칙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건물인 것이 현실이다.
관공서 양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관청 건물을 예로 들어보자. 좌우 대칭일 것, 재료는 화강석을 사용할 것, 건물 표면은 적당히 거칠 것, 아니면 아예 금속판을 사용하여 빤질빤질 할 것, 화강석이 아니면 최소한 검붉은 벽돌이라도 사용할 것, 한국 전통양식을 재현할 것, 서양 고전주의도 무방함, 서양 고전주의는 잘만 쓰면 효과가 더 좋을 수도 있음, 출입구는 큰 계단을 거느리며 위용을 갖출 것, 굵고 높은 기둥이 도열할 것, 지붕은 하늘을 덮을 듯 웅대할 것, 창은 가지런히 반복될 것, 색조는 전반적으로 회색 풍을 유지할 것 등등이다.
실내도 마찬가지이다. 광대한 계단을 올라 웅장한 출입문을 지나면 로비가 나온다. 전면에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위엄을 갖추고 기다린다. 계단 한 편에는 보통 큰 거울이나 추가 달린 큰 시계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큰 화분이 있다. 좌우로 복도가 갈라진다. 천장에는 굵은 화살표가 방향을 지시하고 무뚝뚝한 글씨의 부서 이름들이 나열해있다. 복도 양편에는 각 부처의 방들이 서로 노려보며 나란히 반복된다. 가난했던 1970년대에 콘크리트 박스형으로 지은 구청이건, 조금 살만해진 요즘 비싼 화강석으로 치장한 구청이건 속은 똑같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외관은 조선시대 궁궐과 성곽을 적당히 합쳐놓은 건물이 된다. 실내는 군대 막사와 같은 구성이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군사독재기를 거치며 학교와 관청 등에 강제적으로 이식되어온 구성이다. 관공서 건물들은 하나의 양식으로 묶여 불릴 정도로 똑같은 모습의 두꺼운 갑옷을 두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은 뒤집어 얘기하면 설계자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경전이다.
설계자 선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관급 공사는 설계경기로 나온다. 취지는 좋지만 공무원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된다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최종안을 3배수 정도로 추려놓고 교수들을 불러 고르라고 한다. 살아남은 안들은 그놈이 그놈이라 사실 어느 것이 되어도 차이는 없다. 붕어빵과 잉어빵과 국화빵을 놓고 고르라는 식이다. 당선작을 심사한다기보다는 당첨작을 뽑는 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관공서 양식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전통 논의가 사라진 지금, 전통건축을 재현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있다. 한국의 전통성을 지키는 수호자를 자임한다. 전통과 관습과 품위라는 가치로 타당성을 확보한다. 조금 심한 경우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으로까지 여기는 묘한 심리 상태가 퍼져있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관공서 양식은 공무원들이 국가권력, 좁게는 자신들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척도이다. 관공서 양식은 유교 왕정시대의 잔재가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기를 거치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유교 왕정시대의 관료적 권력욕이 고스란히 남아 건물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잔재이기도 하다. 관공서와 학교를 가능한 한 위압적으로 만들어서 국민들을 억압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세뇌 교육시키겠다는 발상이다. 군사독재 정권은 자신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이런 건물구조를 아주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일차적으로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군사독재 정권의 주역들이기도 했고, 좀 더 일반화하자면 일제 군국주의의 가치관과 군사독재의 가치관이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여전히 고압적이다. 민원 창구 직원의 얼굴 모습 문제만은 아니다. 구조적 체계의 문제이다. 인허가와 예산이라는 권력을 틀어쥐고 민간 분야의 유연한 창작성을 가로막는 데서 못 벗어나고 있다. 공무원의 본질을 봉사가 아닌 권력으로 생각하며 심한 경우 자신들을 국가 자체와 동일시하려는 생각이 아직도 남아있다.
관공서 양식에 나타난 권위적 건축경향은 이것을 증명하는 구체적 증거이다. 유교 왕정시대의 왕궁에서 따온 전통양식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표준형이다. 여기에 서양 고전주의까지 가세하면 서구식 세련됨까지 갖추면서 공권력의 권위는 두 배 세 배 늘어난다. 우리의 전통 양식에 대한 이해를 매우 안 좋은 방향으로 호도하고 있다. 서양 고전에 대한 오해는 덤으로 더해진다. 한국 전통건축의 재현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공권력의 권위를 보장해주기 위한 배경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 전통건축은 권위적 모습으로 모방,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전통 논의는 민간의 순수 창작 분야에서 시대상황에 맞는 유연성을 가지고 일어나야 한다.
변화의 바람도 읽힌다. 최근 동사무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몇몇 동사무소 건물에서 관공서 양식을 벗어던지고 시민과 친숙한 모습으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동장이 정식 공무원이 아닌 명예직이라서, 동이 인허가권이나 예산권이 없고 민원 업무만 담당하는 말단 행정단위라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역설은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청 건물에서 변화를 읽었다는 것은, 2월 어느 날 잠깐 봄바람의 흔적을 맡은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구청도 움직이고는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청사 안에 어린이 놀이방도 꾸며보고 하지만 건물 전체의 골격이 바뀌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 건물에 들어오기가 싫은데 그 속만 조금 바꾼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좀더, 아니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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