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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서예전 열려/ 동양적 회화로 승화한 '서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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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 서예전 열려/ 동양적 회화로 승화한 '서예'를 만나다

입력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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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1904~1989) 예술의 뿌리이자 정신인 그의 서예 작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 15일 개막했다. ‘고암 서예 시(詩)·서(書)·화(畵) 전’이라는 이름으로 고암의 말년인 1970~8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된 서예 작품 5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고암은 본격적인 회화 수업 이전부터 서예를 연마했고 50대 중반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정착한 후에도 꾸준히 서예 작품을 제작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종종 전시회를 가졌다.

그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융화로 높이 평가받는 70년대 문자추상과 80년대 군상 시리즈 등 회화 외에 서예, 조각, 도자기, 판화, 타피스트리 등 장르를 넘나드는 방대한 세계를 갖고 있지만, 근본은 서예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은 여러 차례 소개됐지만, 서예만 유일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전통적 서예에 가까운 작품부터 획과 자간 구분을 해체하고 변형한 회화적 작품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어 회화에서 그가 이룩한 ‘서예적 추상’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예컨대 주역 64괘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형상화한 작품은 글씨면서 그림이고, 서예면서 동시에 서예적 추상이다.

그에게 서예는 글씨를 그림으로 변화시켜가는 실험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 속 말을 써내려 가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잠시 귀국한 그의 부인이자 이응노미술관 관장 박인경(79) 여사는 "고암에게 서예는 생활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쓰고 싶을 때마다 감정대로 썼기 때문에 그림에서는 바로 드러나지 않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작 중 신사임당이 친정 어머니를 그리며 쓴 한시나 ‘염원평화통일’ 같은 작품은 끝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눈을 감은 그의 한을 느끼게 한다. 그는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데다 1977년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사건에 연루돼 국내에서 오래 동안 기피인물이 됐고 작품 거래까지 금지됐었다.

그러한 정치적 배경을 전혀 모르고 본다 해도 이번 전시는 매우 감동적이다. 작품마다 기운이 생동하는 필획과 참신한 조형 감각,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치열한 작가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먹의 번짐을 살려 필획이 뒤엉킨 문자 덩어리를 이루거나, 문자를 뒤집어 쓰거나 입에 붓을 물고 쓴다든지 하는 온갖 실험에서 나온 독창적인 조형 감각의 현대적 작품들은 30년 전에 제작한 것임을 감안할 때 놀랍다.

고대의 전서부터 근대의 추사 김정희나 중국의 대가 오창석의 글씨, 심지어 아랍 문자 등 다양한 서체를 두루 연구한 흔적도 역력해서 그에게 서예가 시간 나면 하는 여기(餘技)가 절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옛 한시와 명문장 외에 자작시를 쓴 것도 많아서 그가 시·서·화를 아우르던 서예 문인화 전통을 체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는 6월 5일까지. (02)3217-5672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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