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한 전직 외교관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판단력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출범했던 2001년 3월7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일화를 그 논거로 제시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 어떻든 잘 대하려 했다. 그러나 부시는 그런 정성을 무시했다. DJ가 뭘 설명하면 부시는 이내 말을 끊고 자기 의견을 밝혔다. 특히 DJ가 김정일 위원장의 신사고,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강조하면 부시는 ‘믿을 수 없다’ ‘북한을 달래다 보니 버릇이 나빠졌다’는 말로 일축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회담 후 오찬에서도 부시는 DJ와 대화하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와중에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은 의회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부시는 손을 들어 잘 갔다오라고 했다. 미안해 하지도 않았다."
이 전직 외교관이 4년 전의 불쾌한 기억을 상기시킨 것은 그 이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 문제를 비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본을 통해 아시아를 재단하려는 부시의 전략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노벨상을 수상한 DJ조차 무시하는 부시의 단순한 단호함이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간주, 이를 견제할 파트너로 일본을 택하는 노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논지였다.
사실 부시가 일본을 선택하는 것은 일견 당연할 수 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구도에 따라 정치체제를 바꾸고 충실히 보조를 맞춰왔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적으로 얽혀있을 뿐 이념과 체제가 다르고 지도자들도 미국의 가치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혈맹이라는 한국도 현 정부 들어서 독자 노선의 뉘앙스를 풍기는 균형자론을 내세우고 있다. 정치권도 미국에 비판적인 젊은 세대로 가득 차있다. 더욱이 ‘악의 축’이자 ‘폭정의 전초기지’인 북한을 감싸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마음에 안들 것이다. 그에 반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호응하는 등 협력을 아끼지 않는 일본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편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연대는 일본을 불신하는 아시아의 위기감을 증폭시킬 것이며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초래, 아시아 전체를 혼돈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불안정은 미국에도 도움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 한국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승만 장제스 고딘디엠 등 옳지 못한 자들을 지지했고 미국의 가치에 맞는 김대중 노무현 같은 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지적은 부시가 일본과 한국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이 되지않을까 싶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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