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냄새가 아침을 깨운다. 쑥국이었다. 냄비 가득 보글보글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달래 무침과 함께 밥상에 올랐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더해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쑥국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봄은 벌써 온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밤을 얇게 썰어넣고 말아 만든 다시마 반찬이며, 달래무침이며 거기에 봄 내음 가득한 쑥국까지…. 쑥 향기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사이 입맛이 뚝 떨어졌다. 생선이랑 매콤한 찌개까지 챙겨 먹어 보지만 좀체 회복세를 보이지 않던 차에 쑥국이 주는 향기는 사뭇 마력 같은 게 느껴졌다. 입맛이 살아났으니 더 이상 무얼 바라랴! 봄은 역시 나물에서 실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아내는 봄을 예사로 지나치지 않는다. 틈틈이 논두렁 밭두렁으로 나가 쑥이랑 달래, 냉이를 캐서 가족들의 식탁에 봄을 전해 주기에 분주하다. 그 맛에 생기가 돋는 가족들을 보며 아마 행복해 할 것이다. 주말에 간혹 도시락을 챙겨 들고 야외로 나갈 때도 작은 칼과 바구니를 잊지 않고 챙긴다. 아이들에게도 쑥이며 냉이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자연이 주는 소중하고 풍성한 은혜를 말 없이 체험하게 한다. 유년 시절 고향의 봄 들판은 나물 캐는 처녀들로 꽃밭을 이루었다. 딱히 반찬을 마련할 형편도 아니었거니와 제 철 자연산 음식을 먹는 게 너나 할 것 없이 당연한 시절이기도 했다. 누나는 나물을 캐러 갈 때마다 코흘리개인 나를 데리고 봄기운을 쐬어 주었는데 아마 아침 쑥국의 향기가 유독 감미로웠던 것도 그 추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봄나물은 의학적 효용성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현대인들의 참살이(웰빙) 먹을 거리로 인기다. 예전과 달리 웬만하면 하우스 재배가 가능하고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나 겨울을 넘기고 흙의 기운을 받아 낸 들녘의 그것과 견줄 수 있을까? 캐는 이의 정성까지 깃들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보약이 어디 있단 말인가? 쑥국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아침…. 아내의 사랑이 새삼 예뻐진다.
이용호·경남 사천시 선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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