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지난해 9월20일~23일)과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처들이 이 사업을 사전에 인지하고 개입했다는 정황증거가 담겨진 철도공사의 문건까지 공개됐다.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과 이번 사건의 연계 가능성은 두 군데서 동시에 제기됐다.
먼저 사업 참여자인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는 14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는 대통령의 방러에 맞춰 러시아 회사의 인수 계약을 발표하려했고,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도 이에 맞춰 알파에코사에 인터뷰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씨가 지난해 8월 사할린 유전개발 현장을 방문한 뒤 곧바로 모스크바로 가는 등의 행적이 모두 대통령의 방러를 염두에 둔 것이었고, 주러 대사관 등 관계 기관들도 보조를 맞췄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15일 공개된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 프로젝트’라는 문건과 일치하고 있다.
철도청과 철도교통진흥재단이 지난해 7~8월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은 "(사할린) 유전사업, (임진강 예성강) 건자재 사업에 대해 (국정원 외교부 건교부 통일부에) 비공식적으로 양해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사할린 유전은 현재 청와대 외교안보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향후 산자부에서 주관할 것" "한러 정상회담 때 유전회사(페트로사) 인수에 대한 정부간 조인식이 거행될 예정이며 이광재 의원이 조인식의 방문자 명단 작성 업무를 총괄한다"는 대목이 있다.
권씨 주장과 문건 내용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방러에 맞춰 관련 부처들이 사업을 지원했으며, 이 의원도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철도공사의 사업 참여는 확고한 안전판을 마련한 상태에서 추진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권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직 없다. 대통령의 방러 업무를 담당했던 외교부 당국자는 "내가 모를 리 없는데, 신문을 보고서야 사건을 알게 됐다"며 "문건과 주장은 관련자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문건의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다.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이 허문석 KCO대표 등의 말만 믿고 확인 없이 문건을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광재 의원도 "나를 팔기 위해 만든 문건"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과 맞물린 의혹들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규명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김학태씨 일문일답/ "전씨에 받은 30억은 로비자금 아니다"
전대월(43) 하이앤드 사장으로부터 철도청에 대한 주식양도채권 30억원을 넘겨받은 김학태(46)씨는 15일 "받은 돈은 로비자금이 아니다"라며 정치권과의 연계설을 부인했다. 당초 이 사건 관련자 중 한 명인 권광진 쿡에너지 사장은 "전씨의 코리아크루드오일 지분 42% 중 15%가 자금동원을 위한 로비용 자금이라고 들었다"고 말한 바 있어 이 자금의 행방에 의혹이 쏠렸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전대월씨는 어떻게 알게 됐나.
"평소 알던 선배의 소개로 만났다."
-전씨에게서 넘겨받은 채권 30억원은 어떤 명목이었나.
"전씨가 2003년 춘천 한일아파트 시행사업을 맡았을 때 20억원을 빌려줬다. 이후 이런 저런 이유로 10억원 가량을 더 빌려줬고, 그것을 철도청 채권으로 돌려 받은 것이다. 전씨는 보광휘닉스파크 콘도 사업 등 여러 건설 시행사업을 해왔다."
-채권을 넘겨받은 날짜와 장소는.
"지난 해 10월께 법무법인 ‘우현’(철도청의 유전사업 법률사무를 대행한 곳) 사무실에서 양도 받았다. 채권은 현재 내가 전부 가지고 있다."
-30억원이 로비자금이라는 설이 많았다.
"전씨로부터 정치권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바가 전혀 없다. 순전히 개인 채무일 뿐이다."
-전씨 소유 채권 84억원 중 54억원을 넘겨받은 황모씨는 유전사업계약 파기 후 철도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당신은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국가기관이 설마 돈을 떼어먹겠나 싶었다. 상태 추이를 봐가며 소송을 낼까 생각 중이다."
-전씨와 연락은 되나.
"최근 한번 통화한 적 있다. 부도수표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 중인 것 같더라. 곧 검찰에 나가서 의혹을 해소할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하더라. 나도 검찰이 부르면 언제든 관련자료를 제출하고 수사에 협조할 생각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檢, 내주 계좌추적/ 사례금 120억 행방 확인 주력
검찰이 철도청(현재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의혹 사건 관련자를 출국금지 조치한데 이어 다음주부터 계좌추적에 착수키로 함에 따라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이 속시원히 풀릴지 주목된다.
우선 검찰은 철도공사 자회사인 철도교통진흥재단(이하 철도재단)이 전대월 하이앤드 사장,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 등 민간 사업참여자에게 사례금으로 지불하려 한 120억원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철도재단은 지난해 9월16일 유전개발회사 코리아크루드오일(KCO)에 대한 전씨와 권씨 소유 지분 12만주를 액면가의 20배인 주당 10만원씩 120억원에 인수하고 대금은 3개월 뒤 지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전씨는 자신 몫인 84억원 어치 채권을 54억원과 30억원으로 쪼개 계약 당일 제3자인 황모씨와 김모씨에게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전씨가 채권을 넘기고 실제로 받은 돈이 얼마인지, 그리고 이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또 감사원 조사에서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본부장 등 관련자들의 배임 혐의가 드러난 만큼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사건 관련자들이 유전사업 추진을 위해 불법적인 돈거래를 했는지, 정치권과 금융권에 금품을 건넸는지 추적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단서가 드러나면 수사는 배임 규명보다 청탁·로비 쪽으로 급선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 인물인 허문석 KCO 대표가 조기 귀국하지 않고, 잠적한 전대월씨의 신병확보가 늦어질 경우 검찰 수사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주요 의혹들에 대해 관련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이들을 모두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선 사건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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