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 세상/ 공지영 신작장편‘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 세상/ 공지영 신작장편‘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입력
2005.04.16 00:00
0 0

공지영표(標) 소설의 힘은 통속적인 것을 통속적이지 않게 말함으로써 통속에 두드러기 난다는 사람들까지 그 반(反)통속의 화술로 끌어당기는, 그래서 끝내 통속의 감동, 통속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그 통속의 아름다움은 ‘뻔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뻔하다고 치부해버린 탓에 ‘관심 두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연민하지 않고, 깨닫지 못한’ 무엇에서 비롯한다. 이를테면 그 힘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의 재료로 잘 조제된 천연몰약처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독자를 사로잡는 효능이다. 그의 신작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발행)은 27살의 불우한 사형수와 황폐한 내면의 30살 여자가 만나 이해하고 용서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여자가 저녁 빗길을 운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비는 저 불빛들 속에서만 내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젖게 하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를 테니까."(9쪽)

여자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미대 교수다.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 없어 보이지만, 그녀는 가족에게서조차 위로 받지 못한 유년의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 한다. 삶과 세상은 ‘지루하고 진부하고 무의미’할 뿐이어서, 세 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품을 내어주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칠순의 수녀인 모니카 고모다. 세 번째의 자살 시도 직후 그녀는 종교 교화위원인 고모의 손에 이끌려 한 사형수를 만나게 된다. 법원이, 그리고 신문이, 세 여자를 살해하고 그 중 한 어린 여자를 강간까지 했다고 낙인 찍은 흉악범이다.

소설은 남자가 자신의 유년기부터 사형수로 수감되기까지의 삶을 수기처럼 기록한 ‘블루노트’와 화자인 ‘나’(여자)가 사형수와 교감해가는 과정이, 모니카 고모 등 주변인들의 삶과 얽히며 이어진다.

조소와 적의로 세상 앞에 선 사형수와, 냉소와 환멸의 삶을 내팽개치려는 ‘나’의 팽팽한 대면은 상처가 아물 듯 서서히 이완된다. 그것은 사형수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며 어이없이 떠안아야 했던 죄의 무게, 여자가 안고있는 상처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신문 기사에는 사실은 있는데 사실을 만들어낸 사실은 없어요. 사실을 만들어낸 게 진짜 사실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이 없어요."(205쪽) 전조등 불빛 바깥 어둠 속 빗줄기 같은 ‘진짜 사실’들, 가면을 벗어 던진 맨 얼굴의 두 사람이 상대의 상처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는 과정, 그것이 관심이고 이해며 연민이다. 그 연민은 곧 상대와 자신의 상처에 대한 깨달음이다.(248쪽)

두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도 겨우 마지막 순간 쥐어짜며 했던 그 말, 그 용서라는 것"(p.138)에 도전했고, 거듭 패배하면서도 끝내 이루어낸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던 카뮈의 말처럼, 형을 집행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죄와 벌, 선과 악, 그리고 진정한 삶의 근원을 묻고 있다. 그 대답은, 질문의 방식이 그러했듯, 통속 위에 군림하는 철학의 고상한 명제나 종교적 화두 정진으로 찾아질 것은 아니지 싶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