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속칭 집창촌) 화재참사를 계기로 ‘정신지체장애자 수사매뉴얼’이 발표된 가운데 경찰이 이미 하달된 규정을 어기고 업주가 보는 앞에서 정신지체자 여성에게 성매매 강요 여부를 물은 것으로 드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경찰의 인권의식이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15일 국회 여성위원회(단장 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1일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참사 2차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종암경찰서는 화재참사 직전인 26일께 송모씨가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 경찰서로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업주 고모씨와 마담 홍모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송씨를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당했는지 여부를 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경숙 의원측은 "경찰이 당초 송씨를 격리해서 조사했다고 말했지만 송씨의 진술조서를 작성한 박모 순경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국회회의록에도 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조사하는 장소에 업주와 마담이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종암경찰서장은 "여청계 사무실 안에 같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마지막 진술조사과정에는 5c 정도 떨어진 곳에서 조서를 꾸몄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일선 경찰서에 하달된 성매매 수사매뉴얼상의 ‘성매매 피해자를 조사할 경우 업주 등과 분리조사하며 이를 위해 진술녹화실을 활용해 격리조사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배한 것. 특히 경찰은 송씨가 감금당했거나 성매매를 강요당한 적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업주가 버젓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 외에도 종암경찰서 산하 개운지구대는 화재참사 이틀전인 25일께 송씨 이름으로 "미아리 ○○○ 4-45번지. 업주가 윤락시키니까 빨리 경찰 와 달라. 전화하지 말고 출동 요망"이라는 신고를 받았지만 정작 현장에 출동해서는 송씨를 상대로 성매매 강요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업주가 있는 상황에서 전 종업원을 상대로 성매매 여부만 물은 뒤 현장에서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운지구대 관계자는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아 출동했지만 성매매 남성이나 콘돔 등을 확인하지 못해 무혐의 처리했다"고 말했다. 결국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성매매를 했는지 여부만 확인한 꼴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고 있는 김미령 자립지지공동체 대표는 "선불금 때문에 사실상 노예생활을 하는 성매매 여성도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수사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게 다반사"라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사지침을 하달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인권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진술조서를 받기 전 업주가 없는 상담실에서 송씨에게서 성매매를 강요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수사과정상 잘못은 감찰조사 뒤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