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릅뜬 눈에 성난 표정으로 절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사천왕(四天王)상은 자애로운 표정의 불상과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첫 인상이다.
관조 스님이 사진을 찍고 건축가 이대암 씨가 글을 쓴 화보집 ‘사천왕’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사천왕은 초기불교에 없던 것인데 훗날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고대 힌두교의 토속신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래서 비파를 든 동방지국천왕, 칼을 든 남방증장천왕, 용과 여의주를 든 서방광목천왕, 보탑을 든 북방다문천왕 등 사천왕은 수미산의 사방을 지킨다는 설화가 만들어졌다.
장흥의 보림사, 완주의 송광사, 고흥의 능가사, 홍천의 수타사, 청도의 적천사, 양산의 통도사, 영광의 불갑사, 안성의 칠장사 등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사천왕상이 있다.
이 화보집은 강렬한 색채, 온갖 잡귀를 밟고 선 엽기적이기까지 한 이 8개 사찰의 사천왕상의 세부를 화려한 원색 도판으로 소개하면서 사천왕의 기원과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다 같은 사천왕이지만 표정이 제 각각이다. 보림사의 사천왕은 섬세한 표현과 역동적인 모습이 두드러지고, 송광사의 사천왕은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 사천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수타사 사천왕상은 입과 수염모양이 웃음을 자아낸다. 적천사 사천왕은 까까머리에 미소를 머금고 있고, 통도사 사천왕은 억불을 주도한 유생들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듯 관모를 쓴 유생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상을 안치한 천왕문이 조성된 것은 라마교의 영향이며, 임진왜란 후 사찰 전체를 사천왕의 보호를 받는 도량으로 꾸미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새롭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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