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보낸다’고 했다. 그만큼 봄볕이 따갑다는 소리다. 사계절용 패션소품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지만 봄이면 늘 아쉬운 것이 선글라스다. 겨울을 지낸 여린 눈에 햇살은 너무 강렬하고 장롱속 선글라스는 한해가 다르게 촌스럽다. ‘새로움에 대한 탐욕’이라는 패션의 속성은 선글라스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지난달 방한했던 프랑스 유명 아이웨어 디자이너 알랭 미끌리는 특히 국내 선글라스 소비가 상당히 대담해졌다고 말했다. 벌써 3번째 한국을 찾은 미끌리의 말은 이렇다. "한국의 중년세대가 남과 같아보이는 데 주력했던 것과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남과 다른 나만의 모습을 강조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선글라스 선택에 있어서도 더 강한 분위기의 프레임 디자인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벌써 몇 년째 세계 선글라스 패션의 키워드는 ‘오버사이즈(over size)’다. 렌즈 크기가 커지는 추세이지만 올해는 오버의 제곱쯤은 될 것 같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가 끼고있는 선글라스에서 엿보듯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커다란 렌즈가 인기다.
50~60년대식 복고주의 패션흐름을 반영하는 한편 선글라스 특유의 관음적 기능이 강조된 것이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렌즈뒤에서라면 눈빛은 커녕 표정 하나 흘리지않고도 얼마든지 타인을 관찰하고 음미할 수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눈꼬리에 살기가 번뜩인다 한들 오버사이즈 선글라스안을 누가 들여다볼 수 있으랴.
‘오버’하는 것은 렌즈 크기만이 아니다. 올해엔 디자인도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소위 ‘퍼놀로지’(fun과 technology의 합성어·기능성과 재미를 함께 추구하는 디자인 경향)의 부각으로 디자인에 다양한 재미와 패션감각을 불어넣는 시도가 부쩍 늘었다.
알랭 미끌리가 내놓은 신제품 팩트(PACT)라인은 흔히 뿔테로 불리는 식물성 아세테이트 소재를 사용해 투명한 크리스털 색상에 검정색으로 물감을 흩뿌린듯한 효과를 연출, 팝아트적인 감각을 물씬 풍긴다. 불가리 아이웨어는 블랙과 화이트를 앞뒤로 매치해 세련되면서도 장난기가 다분한 제품을 내놓았다. 또 미우미우는 마치 2개의 선글라스를 겹쳐서 쓴 듯한 재미있는 선글라스로 눈길을 끌고있다.
프라다는 안경테에 가로로 컬러 블록을 넣어 독특한 도회적 감각을 살린 제품을 출시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안경 다리에 화려한 색상의 꽃 자수를 놓아서 올 봄 거의 광적이다시피 한 플라워 파워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고 샤넬은 아이웨어로는 드물게 자개를 사용해 단아하면서 고급스럽게 표현하거나 형광색 로고를 넣어 대담하게 장식했다.
안경다리 앞쪽에 브랜드 로고를 커다랗게 장식하던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브랜드를 대표하는 문양을 언밸런스한 방식으로 장식해 세련미를 더하는 것이 많이 눈에 띈다. 샤넬의 더블C가 가방 한구석에 약간 잘린듯한 형태로 박히는 것과 같은 스타일. 로고를 아주 작게 형광문자로 박아넣거나 대표 문양을 다소 잘린듯한 형태로 배치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알랭 미끌리는 방한인터뷰에서 "이제 선글라스 선택은 기능보다 취향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고 보면 봄볕에 시력 손상을 걱정하는 것은 몸에 밴 습관에 불과한 지 모른다. 자외선 차단엔 모자가 훨씬 효용가치가 큰 데도 너나없이 선글라스를 찾는 건 틀림없이 다른 속셈이 있을 터.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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