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을 꺾던 밤’이라는 애상적인 시가 있다. 30여년 전에 타계한 신석정의 시다. '너와/ 내가/ 백목련을 꺾던 밤은/ 달이 유달리도/ 밝은 밤이었다// 백공작 같은/ 그 가슴에 안길/ 백목련을 생각하며/ 나는 그 밤을 새워야 했다// 인제/ 하얀 꽃이파리가/ 상장(喪章)처럼 초라하게 지는데/ 시방 나는/ 백목련나무 아랠 지나면서/ 그 손을/ 그 가슴을/ 그 심장을 어루만진다> 목련을 꺾어 주던 하얀 밤을 그리워하는, 격조 있고 아름다운 시다. 봄밤이 아름다울수록 상실의 비애도 크다.
■ 일찍 핀 목련은 시나브로 꽃잎을 떨구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천지에 가득 피어나고 있다. 올해는 시집 ‘진달래꽃’이 출간된 지 8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김소월 시 축제가 16일 그의 모교인 서울 오산중에서 열린다. 꽃을 소재로 한 소월 시 중에는 ‘산유화’와 ‘진달래꽃’이 애송된다. ‘산유화’ 만큼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도 드물지만, ‘진달래꽃’처럼 폐부를 찌르는 정한(情恨)의 시도 없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는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오리니,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임을 차마 뿌리치고 떠날 사람은 없다.
■ 예전 벚꽃놀이는 진해 군항제로부터 북상해 창경원 밤 벚꽃놀이로 마감되었다. 근래는 창경궁 벚나무를 일부 옮겨심기도 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가 명소가 되었다. 야간조명이 휘황하고 교통이 통제되는 가운데, 연인원 700만명이 모여들어 벚꽃 아래 낭만과 정취를 누리는 대규모 축제가 펼쳐진다. 하지만 벚꽃이 흐드러지는 길은 이제 경주보문단지, 제주, 화개장터, 충주호, 마이산, 경포대, 춘천호 등 전국에 산재해 있다.
■ 작열(灼熱)하듯이 단 며칠만 만개하는 연분홍 벚꽃에는 집약적 화사함과 찰나적 매력이 있다. 다른 꽃과 확연하게 다른 벚꽃은 과거 일본인이 군국주의 예찬에 악용하는 바람에 그들의 꽃처럼 오해 되어 왔다. 가장 화려한 왕벚나무는 일본에 수출됐다가 역수입되기도 했다. 몇 해 전 한라산에서는 300년 된 왕벚나무 세 그루가 발견되어 한국이 원조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더 큰 긍지를 갖고 벚나무를 키우자. 도시마다 제2, 제3의 윤중로를 조성하고 그 꽃길에서 봄꿈을 꿔보자.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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