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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목숨'낸 박진성씨/ 정신을 좀먹는 외로운 病 내몸을 삭히는 진땀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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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목숨'낸 박진성씨/ 정신을 좀먹는 외로운 病 내몸을 삭히는 진땀의 詩

입력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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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27) 시인은 하루 네 번 12알의 약을 먹는다. ‘알프라졸람’이라는, 안정제의 일종이다. 까닭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극도의 공포를 순식간에 눌러, 혼을 풀어헤쳐 버리는 막강한 약이라고 한다. 중증 공황장애 환자인 그는 고2 말이던 1996년 2월부터 이날까지 빠짐없이, 살아있기 위해, 그 약을 먹었고, 수 없이 중환자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가 그 고통스러운 발작의 진땀으로 첫 시집 ‘목숨’(천년의 시작 발행)을 냈다.

"산다는 일이 숨결 곳곳에 구멍을 내어 설움도 가난도 비루함도 숨 쉬게 해줘야 하는 거라지만/ 어쩐지 숨 쉬는 일이 뻑뻑해서 숨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 나, 부족의 제사장처럼 금강에 서곤 하였는데//… 격렬함으로 들이마셨다가 고요로 내뱉는 스물일곱의 내 숨결 속으로, 음복하다 취한 사람처럼 낮달이 제 몸부림을 들이미는 거였다…"(‘목숨’)

공황장애는 호흡곤란, 균형감 상실 등의 증상으로 발작하는 정신질환이다. 그 고통과 처음 대면한 순간을 그는 무당의 신내림 같은 것으로 기억한다. "신병 든 것처럼 이후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는 수업 중에도 발작의 징후가 느껴지면 "휘적휘적 검을 玄(현) 획처럼 걸어" 병원을 찾아가야 했고, "누워서 자는 나무가 되어"(‘외롭고 웃긴 가게’)야 했다.

그가 겪었을 염세와 자기혐오, 세상에 대한 막연한 적의가 어떠했을까. ‘나쁜 피-동물의 왕국’이라는 시에서 그는 "어젯밤엔 주사바늘 꽂다가 선인장 될 뻔했어요.… 나를 계몽하려 하지 마세요,… 어, 어, 그 주사 안 치워 주, 죽(어/여)버릴거야!"라고 절규한다.

발병 전, 그는 남녀공학 교내에서 연애편지 대필로 꽤 날리던 ‘작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고려대 서양사)시절 기형도의 낯선 세계를 만났고, 이성복 황지우 송재학 시인의 시를 알게 됐어요." 그는 지옥 같은 ‘나쁜 피’의 자학을 벗어나기 위해 시에 매달렸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직 시만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광기의 화가 고흐가 있었다. "고흐를 미친 듯이 찾아 보고 읽었어요. 그의 삶에 제 삶을 투영했던 거죠." 고흐가 그의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테오에게’ 연작 시편들은 그 과정의 삶과 예술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다. "몇 프랑의 물감으로도 만질 수 없는 저 경계를/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하나"(‘밀밭에서-테오에게’)

2001년 그는 시장 좌판의 순대 장수 여자의 주름살을 바코드에 비유한 시 ‘슬픈 바코드’로 ‘현대시’ 신인상을 타며 등단했다. 외로운 중얼거림에 세상이 응답한 것이었다.

단 한 줄의 시행을 뽑아달라고 하자, 그는 "울분을 고요로 바꾸는 힘으로 자주 눈이 내렸다"(‘적벽 가자’)는 시행을 들었다. 2003년 겨울 눈 오는 밤에 쓴 시라고 한다. 이 시구처럼 그 깊은 울분이 고요해질 수야 있으랴만, 고황의 멍으로 남지 않음만으로도 고맙고 푸근한 일이다. 하루살이 같았다던 그의 삶은 시집의 끝 시, 끝 행에서 "불쌍한 내 자식"이라는 제법 먼 미래의 시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시를 말하기에 앞서 굳이 병을 드러낸 까닭은 정신병이라는 사회의 금기, 그 배제의 의미와 싸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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