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리디노미네이션(화폐액면변경)에 이어 화폐개선을 둘러싼 제2라운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전면개편이냐, 보완이냐, 즉 위·변조 차단을 위해 지폐 도안부터 크기까지 다 뜯어고친 새 돈을 찍어낼 것인지 아니면 현 화폐에 위조방지기능만 보강하는 선에서 그칠 것인지가 논란의 골자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3일 국회에서 "위조방지를 위해 경제의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화폐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조만간 실무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 동안 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발행을 포함해 ‘개혁’ 수준의 화폐제도 변경을 주장해온 한은은 당연히 전면개편론 쪽에 서있다. 위·변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홀로그램(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색상이 달라지는 장치)을 부착하거나, 레이저를 이용해 문자와 숫자 등을 새겨넣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을 위해선 미세조정으론 불가능하고 완전히 새 돈을 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글로벌 트렌드’에 비춰볼 때 너무 큰 우리나라 화폐의 크기도 지갑 속에 쏙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줄이고,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는 기본도안도 고쳐 등장모델이나 그림을 새롭게 바꾸자는 것이 한은 생각이다.
하지만 위·변조 차단기능만 보강해 지금 돈을 그대로 쓰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재경부 실무선은 새로운 화폐발행에 아주 소극적이다. 현안이 산적한 이 시점에 돈을 바꾸는 ‘대(大) 공사’를 굳이 벌일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새 화폐발행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구권을 신권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번거로움과 혼란을 겪을 수도 있고, 각종 자동판매기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모두 교체해야 하는 비용부담도 수반한다.
가장 민감한 부분은 화폐등장인물이다. 세종대왕(1만원권) 율곡 이이(5,000원권) 퇴계 이황(1,000원권) 등 현 지폐 모델은 공교롭게도 모두 ‘이(李)씨 남성’이다. 따라서 등장인물을 교체할 경우 형평성 차원에서 다른 성(姓)의 인물과 여성을 채택해야 하는데, 신사임당(여성) 장영실(과학기술우대) 등이 새 모델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발권당국 관계자는 "지폐모델은 그 나라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만큼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도출과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칫 문중간 대결이나 이념논쟁, 외교갈등(독도, 광개토대왕)이 빚어질 소지도 있다.
현재로선 전면개편으로 갈지, 보강으로 끝날지 불확실하다. 결론은 앞으로 본격화할 논란의 정도에 달려 있다. 일각에선 한덕수 부총리와 박승 총재간에 새 화폐발행(전면개편)에 대한 교감이 이뤄졌다는 관측도 있지만, 그렇다해도 한 부총리가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란 단서를 붙인 만큼 논란수위에 따라 화폐손질의 정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화폐개편은 재경부 승인사항으로 전면개편시 2~3년, 단순보강도 6개월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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