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외국계 펀드들에 대해 세무조사에 들어간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어 정확한 배경과 진상은 아직 베일에 싸인 상황이다. 다만 최근 일부 외국계 자본이 국내에서 올린 막대한 비과세 수익과 불건전한 행태에 대한 시민단체와 언론 등의 잇따른 문제제기가 간접 요인이 됐을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이주성 국세청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외국자본의 조세피난처 악용’문제에 대한 검토 의지를 밝히면서 이미 감지되어 왔다. 새 국세청장 취임을 계기로 "외국계 자본에 대해 정부의 조사의지가 없다"는 여론의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칼을 뽑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 세무조사가 외국계 자본 전체에 대한 정부의 강도 높은 제재 차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외국자본에 대한 정부내 기류는 참여정부 출범초기와 크게 달라진 상태다. 청와대부터 외국계 자본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 ‘중립적 노선’으로 바뀌었고, 특히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더욱 유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실제 한덕수 부총리는 최근 "합법적 영업에 따른 시세 차익을 국부유출로 보면 안 된다"며 금융감독원 등에서 내놓은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분명히 제동을 걸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도 한 부총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때 외국계 자본에 대해 강경했던 금감원 등의 분위기도 상당히 누그러졌다. 외국인 이사수 제한, 5%룰 강화 등 금융감독당국의 외국자본 규제책도 처음 발표될 당시와는 상당히 톤이 완화된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이 단독으로 강경책을 구사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번 세무조사는 12일 이 청장 발언대로 "국·내외 자본을 막론하고 공평하게 대하겠다"는 차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외국자본에게 역차별도, 특혜도 주지 않을 것이며 이번 세무조사도 그런 맥락에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세무조사의 실효성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린다. 그동안 외국계 펀드들의 시세 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못한 이유 중에는 조세협정 등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칼라일과 뉴브리지의 경우 우리나라와의 조세협정 체결국인 말레이시아의 라부안 등에 법인을 두고 있어 국내 과세가 어려운 실정이다. 론스타는 서울 강남 스타타워 빌딩을 부동산 매각이 아닌 주식 매각 형식으로 매각했다. 우리나라는 론스타의 법인본부가 있는 벨기에 정부와 "주식 매각 차익에 대해서는 과세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세협정을 맺고 있다. 물론, 이들이 조세피난처인 라부안에 법인을 두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지만 이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과세 기준도 미비한 실정이다. 때문에 세무조사에서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적지 않다.
다만 조세피난처 악용 사례의 경우 과세해야 한다는 여론이 정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 세무조사에서 어느 정도의 과세 근거 자료는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 여론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한 외국계 펀드 관계자는 "표적 세무조사를 하는 것 같다"라며 "국내 대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외국계 펀드를 조사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도 "일부 외국계 펀드의 행태를 보면 세무조사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 언론이 한국정부의 외국인 규제책을 잇따라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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