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라크, 이란 등지에 걸쳐 살고 있는 최대 유랑 민족, 쿠르드족의 속담 중에 "쿠르드족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山)만 있다"는 말이 있다. 늘 속기만 한 민족. 험준하고 황폐한 산 말고는 친구가 없던 이들이다. ‘안팔작전’으로 유명한, 1988년 후세인의 대탄압으로 18만 명이 학살당한 곳이자, 우리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 지역이 바로 쿠르드족 거주 지역이다.
1차 세계 대전 때는 터키군에 이용당해 전쟁에 참여했고, 이란 혁명을 지지하며 독립의 희망을 가졌으나 역시 좌절됐고, 91년 걸프전 이후에도 독립운동 단체의 내분으로 또 한 번 기회를 잃었다. 이제 쿠르드 독립운동 지도자 출신인 잘랄 탈라바니가 이라크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희망이 보이고 있지만 그들의 상처는 언제 치유될 지 모른다.
쿠르드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영화 ‘거북이도 난다’ 때문이다. 쿠르드족 출신으로,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으로 널리 알려진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새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가난하고 비참한 쿠르드족 아이들을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아프게 그리고 있다.
이라크 국경지대 쿠르디스탄에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해지자 난민들이 밀려 든다. 아이들은 곳곳에 널려 있는 지뢰를 팔아 돈을 번다. 그러다 팔을 잃고 다리를 절게 된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해 돈을 버는, 어른보다 영악한 소년 위성(소란 이브라힘), 지뢰에 양팔을 잃은 헹고(히레쉬 페이살 라흐만)와 이라크 군에게 겁탈당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헹고의 여동생 아그린(아바즈 라티프) 등 전쟁은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출연자 모두는 비(非)전문배우다. 실제로 쿠르디스탄에 살면서 그 고통을 감내해 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픈 눈을 하고 있다. 헹고역을 맡은 아이는 실제로 전쟁터에서 놀다가 고압선에 두 팔이 타 들어 갔다. 아그린의 아들 리가로 나온 꼬마도 실제로 앞을 보지 못한다.
조연출로 일했던 이란의 명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렌즈 속에 천진한 어린이를 담는 것과 달리 바흐만 고바디는 전작 ‘취한 말…’과 ‘거북이도 난다’를 통해 아이들의 비극을 드러낸다. 관객의 마음을 꾹꾹 찌른다. "나는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있다. 나는 우리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는 민족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이 영화가 개봉한 후 아역 배우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위성으로 등장한 소년은 고바디의 조감독으로 일하게 됐고, 아그린의 아들로 나온 꼬마는 수술을 받아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작은 희망도 존재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고바디 감독에게 이 곳은 여전히 암흑이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22일 개봉. 15세.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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