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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Issue/ 美 휩쓰는 사회적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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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Issue/ 美 휩쓰는 사회적 보수주의

입력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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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 등 도덕논쟁 이슈화…공화당 이념적 접수

"오랫동안 잠자던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Social conservatives)이 깨어나고 있다. ‘도덕적 가치’가 그들을 깨우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 최근 식물인간 테리 시아보의 삶과 죽을 권리를 놓고 치열한 논쟁에 휩싸였던 미국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이후 숙연한 종교적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다. 총기사건이 빈번한 일선 학교에서는 성경 읽기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또 지난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박스오피스를 평정한 배우 멜 깁슨은 교황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제작에 나서는 등 할리우드에도 종교색이 가득하다.

2004년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도덕과 가치관으로 무장한 개신교 우파인 복음주의자 등 한 지붕 다 가족 형태인 미국의 범 기독교 세력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키면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부시를 뽑은 유권자 중 27% 이상을 그들이 차지했다. 여기에 가톨릭 신자들까지 가세했다. 이 세력이 사회적 보수주의자로 종교적 가치를 사회 전체의 일반적 가치로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최우선시 하는 그들은 성서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믿으며 결혼과 가족제도를 중시한다. 동성애자간의 결혼과 낙태를 혐오하고 줄기세포 연구와 인간배아 복제에 반대한다. 가톨릭의 경우 사형제도와 피임에 반대하지만 복음주의는 둘 다 반대하지 않는다. 이처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양측 모두 사회적 보수주의를 미국의 바람직한 미래로 설정하는데는 동의한다.

미 여론통계조사 전문지인 ‘캠페인과 선거’에 따르면 부시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미 중부의 ‘크리스찬 벨리’를 중심으로 31개 주 중 절반 이상이 기독교 윤리관이 투철한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의 본거지였다.

최근 부시 대통령과 로마 교황청까지 나서며 세계적 논란을 일으킨 시아보 사건은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생명의 존귀함과 살 권리를 정치적으로 이슈화 하는데 성공한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들의 힘은 부시 대통령과 그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까지 움직여 이례적으로 연방의회가 ‘테리 특별법안’을 통과하도록 하는 등 정치판에 막강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결국 정치권과 종교단체가 직접 개입하면서 시아보 사건은 진보와 보수 진영간의 이념전쟁으로 비화됐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를 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종교 원리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온건 중도 보수파들은 한 발 물러서면서 "공화당이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에게 점령 당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존 댄포스 전 유엔주재 미 대사는 "공화당이 종교의 볼모가 되면서 보수 기독교의 정치지부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시아보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된 공화당이 20~30년간 장기집권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사회는 개방의 폭을 넓혀가며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인정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하지만 도덕적·종교적 가치의 수호를 앞세운 사회적 보수주의의 세력화는 공존해온 다양한 가치의 틀을 하나 둘 무너뜨릴 수도 있다. 미국 내 4만3,000개의 교회가 소속된 전통가치연맹 위원장인 루이스 센던 목사는 "시아보 사건을 계기로 보수주의자들이 보여준 잠재적 영향력은 동성애자간 결혼과 낙태문제 등 다른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 정계 변화/ 정치권 윤리 잣대 더 엄격해져

"잘못은 저지를 수 있지만 잘못을 덮으려는 거짓말은 용서 받을 수 없다." 사회적 보수주의의 막강한 영향력은 미국 정치의 흐름까지 바꾸고 있다. 과거 같으면 ‘개인의 문제’로 여기면서 크게 문제시 하지 않던 사안도 한층 엄격한 윤리적 잣대로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공짜 여행’의혹에 연루되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톰 들레이(텍사스) 하원 공화당 원내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그가 2001년 한미교류협회로부터 10만 달러 이상의 경비를 받고 한국으로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는 의혹을 제기한데 이어 2000년에는 카지노 도박 업체를 운영하는 인디언 부족이 기부한 경비 7만 달러로 가족과 함께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의혹은 과거 개인 신상의 문제로 넘겼지만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공화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 상원의 재정위원회 조차도 들레이 의원에게 여행 경비를 지원한 워싱턴의 유명 로비스트의 불법 자금 운영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워싱턴에서는 그가 하원 윤리규정을 어겨 정치생명을 마감할 지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 만큼 ‘작은’ 윤리적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현재 미국 정치권의 모습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거짓말이 불러 일으킨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미국 정치권에서는‘정직이 최선이다’는 말이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명제는 잊혀지는 듯 했고, 부정을 저지르고도 시치미를 떼면서 버티는 것이 정치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2003년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이름을 공개한 ‘리크 게이트’는 백악관이 어떤 인사조치나 설명 없이 버티다 대선전에 들어서면서 유야무야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을 부인하며 버티다 7개월 만에 시인했지만 ‘사적인 문제’라는 여론이 퍼지면서 살아 남았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AEI‘정책 제조창’

미국의 사회적 보수화 경향은 1960년대 진보주의에 대항해 처음 등장한 뒤 로널드 레이건 시대를 거쳐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대에 와서 꽃망울을 터뜨렸다.

특히 73년 미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헌은 결정적으로 보수파 기독교 세력들의 단합을 재촉했다. 대표적인 단체 ‘기독교 연합’은 이 같은 흐름을 타고 탄생했다. 이 단체는 ‘가족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미 전역을 대상으로 집집 마다 기독교적 보수이론과 성경 내용이 담긴 우편물을 전달하는 등 사회적 보수주의의 기초를 닦았다.

헤리티지 재단이 펴낸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사’는 이 같은 사회적 보수주의가 발전하는 4P이론을 제시했다. 보수주의 철학(Philosophy)의 정립과 철학의 대중화(Popularize), 철학의 정치화(Politicize), 재정지원(자선·Philanthropy) 등이 그 것이다.

보수주의 철학을 정책으로 발전시킨 최대공로는 7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보수주의 싱크탱크 들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기업연구소(AEI)와 헤리티지 재단은 현대 미국 보수주의 정책의 제조창 역할을 해왔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과 작은 정부론, 교육개혁 등은 이들 싱크탱크에서 만들어졌다.

4P의 고리가운데 최대전선은 언론에서 형성됐다. 지난 대선에서 뉴욕타임스와 CBS뉴스 같은 전통적 주류 언론들은 눈에 띄게 한계를 드러냈다.

거꾸로 폭스뉴스와 라디오 정치 토크쇼 등은 보수주의자들을 한데 뭉치게 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폭스뉴스는 2000년 이후 4년간 시청률을 8% 포인트나 높였으며 특히 공화당원들이 가장 신뢰하는 미디어가 됐다.

장학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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