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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콘클라베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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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콘클라베 斷想

입력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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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는 이름난 사람들의 사생활을 몰래 찍어 황색 언론에 팖으로써 돈벌이를 하는 직업적 사진가를 가리키는 이탈리아어다. 파파라치는 복수 형태고 그 단수형은 파파라초다. 이 말이 한국 대중매체와 일상 속에 깊이 들어온 것은 1997년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아랍인 애인과 함께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뒤다. 사고가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오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소 경멸의 뉘앙스를 지닌 이 이탈리아어 단어가 언론의 집중적 보도에 실려 한국어 어휘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이애나비의 죽음 이후 가장 많은 분량의 부고 기사를 낳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과 함께, 한국 언론에는 또 다른 이탈리아어 단어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들의 비밀회의를 가리키는 콘클라베가 그것이다. 그러나 콘클라베는 파파라치와 달리 일상생활과 깊이 밀착된 말이 아니어서, 새 교황 선출과 함께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기 쉬울 것이다.

라틴어 형태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이탈리아어 콘클라베(conclave)는 어원적으로 ‘열쇠(clavis)를 가지고(cum)’라는 뜻이다. 라틴어 클라비스(clavis)는 열쇠 외에 걸쇠나 빗장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니까 콘클라베의 본디 뜻은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 ‘걸쇠로 문을 잠근 방’이었다. 침실이나 식당, 외양간, 새장, 비밀회의장 등 닫혀 있거나 자물쇠로 잠겨있는 공간을 두루 일컬었던 콘클라베는 9세기 들어 종교적 함의가 짙어져 교회의 성기실(聖器室)이나 제의실(祭衣室) 또는 수도원 경내를 뜻하게 되었고, 14세기 들어서는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뽑는 방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마지막 뜻이, 환유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 ‘교황을 뽑기 위한 비밀회의’로 번진 것은 한 세기가 지난 15세기에 이르러서다.

여든 살 아래의 전세계 추기경들은 1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후계자를 뽑기 위한 콘클라베를 시작한다. 직전 콘클라베는 1978년에 열렸다. 이 해에는 콘클라베가 두 차례 열렸는데, 요한 바오로 2세의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1세가 즉위한 지 33일 만에 선종했기 때문이다. 새 교황은 예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성 베드로로부터 쳐 265번째 교황이다. 교황청의 정의에 따르면 교황은 로마 주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자 사도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이고,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우두머리, 서유럽 총대주교, 이탈리아 수석대주교, 로마관구 대주교, 수도(首都) 대주교, 바티칸의 주권자다.

이 여러 겹의 직책에 이탈리아나 로마와 관련된 사항이 포함돼 있기도 하지만, 교황은 이탈리아 출신이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폴란드 크라코프 출신의 카롤 보이티야가 요한 바오로 2세로 즉위한 것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래 이탈리아 이외 지역 출신으로서는 455년 만이었다. 그 전에도 프랑스 사람말고는 유럽인이라 하더라도 교황이 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교황청 일각에는 새 교황으로 이탈리아인이 뽑히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있는 모양이다. 반면에 가톨릭교도의 인구분포를 반영하거나 지금까지의 인종적 치우침을 교정하기 위해 제3세계 출신 성직자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도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낙태나 이혼, 동성애, 여성성직자 서품 문제 등에서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교회의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다른 종교에 화해의 손을 내밀고 평화주의를 실천하는 데서는 진취적 태도를 보였다. 그런 진취적 태도는 그가 약소국 출신의 교황이었다는 사실과도 조금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검은 피부의 교황을, 적어도 유럽 출신이 아닌 교황을 이번에 볼 수는 없을까? 그것은 가톨릭교가 바로 이름 그대로 보편적 종교라는 것을 처음으로 온 세상에 드러내는 길이기도 할 텐데 말이다.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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