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 팰트로가 ‘세븐’(1995)에서 남편을 걱정하는 사려 깊은 아내로 출연해 관객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을 때,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뜨거운 염문을 뿌렸을 때 뭇 사람들은 얼굴만 예쁜 스타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순식간에 소진할 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익스피어 인 러브’(1998)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상의 무게가 주는 부담을 털어내려는 듯 ‘바운스’(2000)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2001) ‘월드 오브 투모로우’(2004) 같은 전형적인 상업 영화들에 출연하다가도, 정색하듯 ‘로얄 테넨바움’(2001) ‘포제션’(2002) 등 무게 있는 작품들에도 얼굴을 비쳤다. 영악하게도 보이는 그의 예측할 수 없는 행보는 배우를 규격화하려는 할리우드의 속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1930~1998)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 끝에 오븐의 가스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재 여류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삶을 다룬 ‘실비아’의 주연을 맡아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품 성격을 가리지 않는 무채색 이미지 덕분이다.
‘실비아’는 지적이면서도 도발적인 기네스 팰트로의 매력과, 문드러진 영혼을 자양분 삼아 시를 토해냈던 실비아의 생애가 어우러져 관객들의 발길을 끌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재와 팰트로라는 훌륭한 재료를 버무렸지만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않다.
영화는 실비아의 가로 누운 얼굴의 딱 절반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마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반쪽의 숨은 그림을 찾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소문들 밑에 착 가라앉은 묵직한 진실들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천재시인의 불꽃 같은 삶에 짓눌린 탓일까. 영화는 실비아가 왜 습관적으로 자살 충동에 휩싸였는지, 자신의 문재(文才)를 묻어두고 평범한 주부의 삶이라는 골방으로 왜 자꾸 도망치려 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저 두 남녀 사이의 떠들썩했던,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과 고통스러운 파국의 언저리를 맴돌 뿐 그 이상의 지점에 다가가지 못한다.
실비아의 어머니 역을 맡은 기네스 팰트로의 실제 어머니 블리드 대너의 안정적인 연기가 눈길을 끈다.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기’라 여기며 내기하듯이 시를 암송하는 1950년대 대학생들의 치열함과 시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되살린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뒤를 이어 차기 제임스 본드로 낙점 받은 다니엘 크레이그(테드 휴즈 역)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크리스틴 제프 감독. 15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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