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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참새들아, 그때는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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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참새들아, 그때는 미안했다

입력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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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머리가 나쁜 사람을 가리켜 ‘새 대가리’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새의 머리는 그리 나쁘지 않다. 고등학교 입학 시험 공부가 한창이던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살던 집은 장독대가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그런데 장독대가 다른 집들처럼 마당 한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 철물점의 평평한 지붕 위에 있었다.

그 해 어느 날 장독대에서 빈 깡통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계단을 올라 장독대에 얼굴을 내밀자 많은 참새들이 날아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미숫가루를 만들려고 양은 쟁반 위에 널어놓은 누룽지를 많은 참새들이 엉키며 쪼아 먹는 통에 양은 쟁반이 울퉁불퉁한 바닥에 이리저리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여 말로만 듣던 참새 잡이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양은 쟁반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넓고 큰 붉은 색 고무 대야를 준비해 50㎝ 길이의 각목을 세워 반쯤 엎어놓고 그 위에는 큰 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각목에는 줄넘기 줄을 묶어 장독대 밑으로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참새들이 쟁반 위의 누룽지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줄을 잡아당기기 위해서다.

한 10여 분이 지나자 쟁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로 변하였다. 이 때다 싶어 장독대 밑으로 가만히 다가가 힘껏 줄을 잡아 당겼다. 곧 고무 대야 엎어지는 소리와 함께 후루룩 하며 참새들이 날아갔다. 가만히 올라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대야를 좌우로 흔들어 보니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넓은 담요를 대야에 덮어씌우고 대야를 조금 들자 이불 여기저기가 불쑥거렸다.

한 손은 담요 위에서 누르고 다른 한 손은 담요 속으로 넣어 잡았는데 8마리가 잡혔다. 똑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는 5마리, 세 번째는 2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네 번째부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어른들한테서 참새구이가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참새의 깜빡깜빡 하는 올망졸망한 까만 눈을 보자 불쌍한 마음이 들어 모두 날려 보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우리 집 장독대에는 참새가 전혀 날아오지 않았다. 경험을 통해 위험지역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늘 듣던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를 못 듣는 것도 아쉬웠지만 놀라 날아간 참새와 죽다 살아난 참새들 모두한테 먹이를 주지는 못할망정 사람에 대한 또 경계심만 얹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jh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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