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차기 교황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기경단의 비밀스러운 선거 ‘콘클라베’ 자체도 관심거리지만, 신의 뜻을 대행한다는 교황청의 다음 선택이 과연 어느 대륙 출신의 교황을 뽑을 지에 대한 세속적 흥미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20명 이하로 구성된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이 외부와 차단된 장소에 모여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는 단일 후보를 선출할 때까지 선거를 반복한다’는 콘클라베는 수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18일 시작될 교황 선출 과정과 수학의 관계를 한 가상 추기경의 일지로 꾸며봤다.
4월 18일 바티칸시티 성 시스티나 성당. 전 세계에서 모인 117명의 추기경들이 총회와 미사를 마치고 엄숙한 표정으로 모였다. 이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고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을 차기 교황을 뽑기 위해 기도와 묵상과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첫 번째 투표에서는 남미 출신인 X추기경이 55%의 표를 얻었다. 두 번째 투표에서 X추기경의 득표율은 65%까지 올라갔고, 그 뒤를 이은 이탈리아 Y추기경의 지지율도 이전 23%에서 35%로 올랐다. 어느 정도 결정이 되는가 싶었는데 세 번째 투표에서는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 추기경이 외친다. "주님은 아직 자신의 종을 결정하지 않으신 모양이오!"
이번 콘클라베는 요한 바오로 2세가 그 방식을 바꾼 이후 첫 투표이기에 결과가 더욱 기대된다. 과거 방식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오죽하면 과학자들이 ‘혼돈 이론’을 설명하는데 바로 이 콘클라베를 예로 들었겠는가. 투표는 3일간 진행됐는데 오전 오후로 하루 두 차례 비밀투표를 실시, 후보 중 한 명이 3분의 2를 얻으면 교황이 되는 식이었다. 투표함을 열 때마다 결과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주님의 뜻을 알기가 이토록 어려운가요"라고 긴 한숨을 쉬는 내게 수학에 정통한 한 추기경이 메모까지 적어가며 나름의 해석을 내렸던 기억이 난다.
"한 명의 후보에게 표가 모이지 않고 탁구공 튀듯이 결과가 왔다갔다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오. 유력한 후보 A, B, C가 있는데 후보 선호도가 ‘A〉C〉B=50%, B〉C〉A=30%, C〉B〉A=20%’라고 가정해 봐요. 첫 번째 투표에서 A후보가 50%의 득표를 하면 1등은 했지만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지는 못해 2차 투표가 실시되지요? 만약 첫 투표에서 추기경님이 A 후보를 뽑았다면 다음 투표에서 누구를 뽑으시겠소."
옆에서 듣던 다른 추기경이 끼어 든다. "저 같으면 같은 후보를 뽑지는 않으렵니다. ‘A후보가 아닌가 보네’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어차피 3분의 2가 나와야 하는데 이왕이면 다들 빨리 끝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첫 투표에 교황을 정하지 못하면 생각을 바꾸고 싶어지더군요."
"그렇소. 실제로 두 번째 투표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이 그 다음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넘버2’를 택해 투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결과는 확 뒤집히겠지요. 위의 경우 ‘넘버2’ 중 가장 많은 지지도를 얻을 C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실 전체 지지도는 A후보가 훨씬 높고 B후보는 원래 2등이었는데 말이지요."
실제로 1958년 77세의 나이에 예상을 뒤엎고 선출된 교황 요한 23세는 3분의 2를 계속 얻지 못한 강경성향 후보를 대신해 ‘차기 교황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맡기자’고 선출되지 않았던가. 그가 선종 전까지 너무나도 훌륭히 교황 직을 수행한 것을 보면 주님의 뜻이란 이렇듯 오묘하게 움직인다.
어쨌든 콘클라베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는지 요한 바오로 2세는 방식을 바꾸었다. 우선 선거 장소가 어두컴컴한 수도원 풍 숙소에서 최신식 호텔 분위기로 바뀌었다(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곳에서라면 빨리 ‘탈출’하고 싶어 투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게다가 30번 투표를 해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과반수만 얻어도 교황이 된다.
한마디로 과반수만 힘을 모아 30번만 버티면 한 명의 후보를 보다 쉽게 당선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선택한 X추기경이 이미 65%의 지지를 얻은 상황에서 우리가 똘똘 뭉쳐 30번까지만 끌고 가면 투표는 끝나는 것이 아닌가.
또 유럽권 추기경 수가 50%에 가깝지만 표가 갈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남미(추기경 21명) 아프리카(11명) 등 이른바 ‘제3세계’ 국가가 힘을 모아 첫 ‘비 유럽권 추기경’ 탄생을 도모해도 되지 않을까. 네 번째 투표를 앞두고 미소를 짓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지난 번에도 만난 ‘수학자 추기경’이 또 다가온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돌발변수가 제거돼, 유권자의 의지와 합의가 민주적으로 이뤄질 기회가 높아진 것’이지요. 선거는 확률 게임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 후작은 ‘확률 이론의 핵심은 상식을 숫자로 풀어놓은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 투표는 ‘민주적 합의를 역행하는 우연의 논리’로부터 ‘의외의 변수를 최대한 없앤 민주적 합의’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소."
생전에 지구촌 곳곳을 돌며 신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애정을 보이며 포교의 폭을 넓히고자 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제 3세계 출신을 추기경으로 임명하기 좋아했던 그가 선거 방식을 수정함으로써 수학적으로 ‘새 세계의 교황’을 조용히 지지한 것은 아닐까. 네 번째 투표함이 열리고 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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