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길
아편을 사러 밤길을 걷는다
진눈깨비 치는 백 리 산길
낮이면 주막 뒷방에 숨어 잠을 자다
지치면 아낙을 불러 육백을 친다
억울하고 어리석게 죽은
빛 바랜 주인의 사진 아래서
음탕한 농짓거리로 아낙을 웃기면
바람은 뒷산 나뭇가지에 와 엉겨
굶어 죽은 소년들의 원귀처럼 우는데
이제 남은 것은 힘없는 두 주먹뿐
수제비국 한 사발로 배를 채울 때
아낙은 신세 타령을 늘어놓고
우리는 미친놈처럼 자꾸 웃음이 나온다
신경림(70)의 첫 시집 ‘농무’(초판 1973년, 증보판 1975년)는 우리 시집 산책의 출발지였던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보다 반세기나 늦게 세상에 나왔고, 지난 주에 살핀 서정주의 ‘화사집’(1941년)에 견주어도 30여 년 뒤에야 독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진달래꽃’이나 ‘화사집’을 읽으며 겪지 못했던 격세(隔世)의 느낌은 ‘농무’를 뒤적일 때 오히려 또렷하다. 그것은 앞의 두 시집을 빚어낸 연애나 관능 따위의 사적 체험이 사회변동과는 큰 관련 없는 문학의 보편적 질료인 데 비해, ‘농무’의 공간을 채우는 1960~70년대 한국 농촌 풍경과 농민 정서가 압도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 열넷 가운데 열셋이 도시에 살고 있는 시대에 ‘농무’를 읽는 것은 빛 바랜 사진첩을 들추며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다. 당대 농촌 상황을 꾸밈 없이, 섬세하게 재현한 ‘농무’의 리얼리즘은 이 시집을 산업화시대 변두리 공간의 탁월한 문학적 풍속화로 만든 미덕이자, 고농축 산업화의 완료와 함께 시집을 급속히 낡아 보이게 만든 약점이기도 했다.
시의 집 ‘농무’는 크게 보아 세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안방에 담긴 것은 60년대 후반, 70년대 초 한국 농촌 풍경이다. 시집의 제1부에서 제4부까지를 아우르는 이 방은 신경림 문학의 한 라벨이라 할 이야기시의 특질이 가장 두드러지는 공간으로, 미시적 서사의 세계라 이를 만하다. 건넌방은 이 집을 증축하며 새로 만든 것인데, 73~75년 작품들이 모였다. 시집의 제6, 7부에 해당한다. 긴급조치로 상징되는 유신체제의 모지락스러움이 날로 더해가던 시국 탓인 듯, 정치의식의 날이 사뭇 벼려져 있다. 안방의 리얼리즘이 ‘있는 것’을 그리는 리얼리즘이라면, 건넌방의 리얼리즘은 ‘있어야 할 것’을 그리는 리얼리즘이다.
이 두 방말고, 안방 뒤쪽에 골방이 하나 딸려있다. 시집의 제5부에 해당한다. 이 골방 풍경은 안방이나 건넌방과 크게 다르다. 여기 모인 시들은 시인의 등단 초기인 56~57년 작품으로, 사회정치적 상상력 바깥에서 사적 정서를 다소 관념적으로 구가하고 있다. 시인은 등단 얼마 뒤 절필을 했고 10년의 침묵 뒤에야 시 쓰기를 재개했는데, 그 10년 사이에 시인의 문학관이 크게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의 집 ‘농무’의 안방에서는 산업화 또는 근대화의 이름으로 농촌해체와 농민분해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방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다. 첫째는 토착농민이고, 둘째는 광산노동자나 한산 인부, 장돌림 같은 떠돌이 외지인이고, 셋째는 농촌을 떠나 도시변두리에 막 정착한 이농 빈민이다. 이 방은 ‘농무’라는 문패를 낳게 한 이 집의 핵심 공간이지만, 시인은 이 방에 들어와 있을 때 가장 우울하다. 언뜻 흥겨움을 연상시키는 ‘농무’라는 표제와 달리, 시집 ‘농무’는 결코 밝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은 농촌 찬가가 아니다. 농민적 감수성을 약간이라도 지닌 관찰자라면, 도시의 구심력에 흐너지는 농촌을 찬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요즘의 일부 생태주의자처럼, 잃어버린 농촌공동체를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이 방에서, 시인의 눈은 회고의 눈도 아니고 전망의 눈도 아니다. 그 눈은 오직 관찰의 눈이다.
요즘과 달리 농촌에 젊은이들이 제법 남아있던 그 시절에, 시인의 눈에 비친 농촌은 실의의 공간이다. 토착농민이든 떠돌이 외지인이든, 이 방 사람들은 죄다 불행하다. 그 불행의 기원은 궁핍이라기보다 훼손된 존엄이지만, 도시의 살 만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겨울밤’)이다. 이들이 제 불행을 눅이기 위해 기대는 가장 큰 버팀목은 술과 노름이다. 노름이라고 해봐야 "묵내기 화투"(‘겨울밤’)나 "국수내기 나이롱뻥"(‘장마’), 또는 "(주막) 아낙을 불러 육백을 치"(‘눈길’)는 정도고, 술이라고 해 봐야 "소주에 오징어를 찢"(‘파장’)는 정도지만, 음주나 도박을 주제로 한 시집이 아니고서야 ‘농무’처럼 술자리와 노름자리가 자주 나오는 시집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술과 노름으로 삶의 낙 없음을 달래는 ‘농무’ 안방의 거주자들은 제 방을, 농촌을 싫어한다. 그들은 도시에 나갈 힘이 없어서 별 수 없이 고향에 남은 사람들 아니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농촌을 떠돌거나 귀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귀향은 그들에게 귀양과 같아서, 그들은 끊임없이 도시를, 서울을 그리워한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파장’). 도시에 대한 그리움은 시골 붙박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떠돌이 인부의 입에서조차 "아아 이곳은 너무 멀구나. 도시의/ 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원격지’)이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농촌에서, 다시 말해 고향에서 그들은 정주민 의식을 지니지 못한다. 백석의 초기 시에서 출렁이는 것이 타향살이의 시름이라면, 신경림의 초기 시에서 일렁이는 것은 고향살이의 시름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지만, 농촌살이의 시름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낳는다. 그래서 "부락 청년들과 한산 인부들은/ 서로 패를 갈라 주먹을 휘두르고"(‘그 겨울’), 더러는 "농사꾼들과/ 광부들의 싸움질로 시끄럽"(‘산읍기행’)다. 물론 "이 못난 짓은 오래 가지는 않아/ 이내 뉘우치고 울음을 터뜨리고/ 새 술판을 차려 육자배기로 돌리"(‘그 겨울’)지만, 그렇다고 "먼 도회지로 떠날"(‘실명’) 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러 벌어지는 씨름판이나 농악판도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한다. ‘농무’ 안방의 분위기는 흔전만전이라기보다 난장 뒤의 파장에 가깝다.
‘농무’의 화자들은 이 집의 안방에 좀처럼 동화하지 못한다. 그 화자들과 부분적으로 겹칠 시인 역시, 농촌에 갇혀있는 몸이 떠돎의 욕망으로 들썩거리는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 시인은 뒷날 기행시로 일가를 이루고 그 기행시 속에서 한결 편안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 비밀의 일단을 ‘농무’에서 드러난 바 떠돎의 욕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무’에서, 농민의 자식들인 화자들은 이미 농촌에 대해서 타자다. 그들이 태어나 살 비비고 부대끼며 사는 농촌, 그들이 노래하는 농촌 속에서 그들은 생각 많은 이방인일 뿐이다. 이런 분열을 정직하게 그려낸 것이야말로 ‘농무’의 큰 미덕일 것이다.
나는 아직 ‘농무’의 안방 풍경 가운데 놓쳐서는 안될 것들을 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공간의 특징 하나는 군데군데 죽음의 이미지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눈길’의 "억울하고 어리석게 죽은/ 빛 바랜 주인의 사진 아래서" 같은 대목에서 설핏 비치기 시작한 죽음은, ‘폐광’의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는 구절이나 ‘1950년의 총살’의 "빗발이 치고 바람이 울고 총구가/ 일제히 불을 토한다. 통곡하라/ 나무여 풀이여 기억하라 살인자의/ 얼굴을, 대지여" 같은 구절에서 전경화(前景化)한다. 그 죽음은 아마 한국전쟁 앞뒤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 있을 터인데, 역사의 이런 되새김은 석상(石像)의 입을 빌려 "학대하는 자와 학대받는 자의/ 종말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 ‘이 두 개의 눈은’의 강렬한 사회정치의식과 결합해 건넌방으로, 다시 말해 증보판에서 덧대어진 제6, 7부로 건너갈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기실 ‘이 두 개의 눈은’이나 동일한 주제를 청각과 연결시켜 형상화한 ‘전야’ 같은 시는 안방보다는 건넌방에 더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건넌방의 풍경을 살짝만 살피자. 제6부의 ‘누군가’와 제7부의 ‘어둠 속에서’에 슬며시 삽입되는 파리코뮌 일화는 시인이 이 시집의 초판 출간 이후 더욱 악화한 시국으로 매우 급진적인 정치관까지 포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증축된 건넌방을 포함하는 시의 집 ‘농무’는 ‘창비시선’의 첫 권이 되었거니와, 안방의 미시적 서사와 건넌방의 정치적 상상력은 그 뒤 2백수십 권이 이어진 창비시선의 두 젖줄이 되었다. 나는 오늘의 산책을 시작하며 ‘농무’가 격세지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 ‘농무’의 언어가 발설된 시대의 농촌상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그 상황이 이제 도시 안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농무’는 낡지 않았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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