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 평론은 너무 무겁고 심각하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많이 유발하는 것 같다. 좀 웃고 즐기는 기분으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 큰 일 날까? 욕을 좀 먹더라도 어디 한번 시도를 해 보자.
지난 2일 치러진 열린우리당 전당 대회 이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시민 의원의 ‘정동영 때리기’에 이어 나타난 386 의원들의 집중적인 ‘유시민 때리기’가 네티즌들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떤 이는 386 의원들을 "시대정신이 뭔지도 모르는 위인들"이라고 비판했는데, 바로 여기에 정답이 있는 것 같다.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건 ‘명분’과 ‘선점’과 ‘돌격’이다. 우리 시대의 젊은 대중이 목말라 하는 이슈의 명분을 선점하여 전투적 자세로 돌격하는 것이다. 386은 이 점에서 유 의원에게 KO패를 당했다. 네티즌들은 유 의원을 ‘개혁의 화신’으로 보는 반면 386을 ‘보수화된 기득권 세력’으로까지 보고 있으니 말이다.
386이 문제삼은 것은 유 의원의 분열주의적 방법론과 행태였다. ‘민주당 분당’을 성공시켜 놓고도 그런 자살골을 넣다니 놀랍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대결에서 열린우리당이 완승을 거둔 주요 이유는 명분이 열린우리당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배신자론’으로 열린우리당의 방법론과 행태만을 물고 늘어졌다. 배신과 기회주의는 내부적으론 중요한 문제일지 몰라도 대중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대중은 평소 정치권을 가장 오염되고 타락한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기회주의에 눈 하나 꿈쩍할 리 만무하다. 명분이 있는 한 좀 과격하더라도 정치판의 혁명을 외치는 쪽이 이기게 돼 있다. 물론 대통령 권력을 등에 업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유시민 때리기’에 나섰던 386들은 네티즌들의 분노에 주눅이 들었지만 그 정도론 어림도 없다.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든가 아니면 유 의원을 능가할 정도로 ‘시대정신’에 충실하는 길밖에 없다. 시대정신에 충실하는 것이 정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 믿기에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때마침 유 의원의 ‘서울대 운동권 친구’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386을 비난하면서 좋은 말을 다 해 버렸으니 그걸 좀 가져다 쓰기로 하자.
유 의원은 2002년 여름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을 밝힌 바 있다. 한 교수는 그걸 거론하면서 386은 "집단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불과 2~3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386은 1980년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명심하고 과거 ‘바리케이드’와 ‘화염병’의 정신으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한 교수는 ‘독불장군’‘독선’‘이분법’ 등 유 의원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3년 전 노무현 후보에게 쏟아졌던 비판과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면서 386을 당시 노 후보를 비판했던 사람들과 동일시했다. 열린우리당은 바로 1년여 전 뜻 맞는 개혁세력만으로 뭉친 집단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비교할 수 있느냐고 항변할 일이 아니다. 그 누구에게건 명분만 있다면 ‘독불장군’‘독선’‘이분법’을 구사해도 괜찮다는 가르침으로 알면 되겠다.
한 교수는 386에게 "유시민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수구에게 날을 세워 싸워 봤느냐"는 질문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생뚱맞은 질문이긴 하지만 386은 수구에게 날을 세워 싸우는 일에 미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명분’과 ‘선점’과 ‘돌격’이라고 하는 시대정신의 실천에 있어서 유 의원은 그간 무거운 짐을 혼자 져 왔다. 이제 386들이 나눠 질 때다. 유 의원의 ‘희소가치’를 줄여주는 것이 성공적인 개혁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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