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총선을 계기로 1943년 독립 이래 60년 가까이 계속된 분열과 다툼의 역사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레바논의 앞날에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의회 해산을 앞두고 실시될 총선을 이끌 내각 구성이 6주째 표류하며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혼탁한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13일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 사이의 내전이 일어난 지 30년째 되는 날이라 국민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다.
로이터 통신은 "오마르 카라미 전 총리와 에밀 라후드 대통령, 나비 베리 국회의장이 4시간 넘게 논의했지만 선거구 획정 문제와 총선 주무 장관인 내무장관의 선임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내각 구성에 실패했다"고 12일 보도했다.
그러나 야당은 "세 사람 모두 시리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서 합의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총선 자체를 미뤄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라고 비난했다.
분석가들은 5월 총선이 레바논 정국의 핵 폭풍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교체와 29년간 레바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리아의 퇴장 가능성에서다.
중동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였던 레바논은 1975년 4월 13일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부녀자 등 26명을 사살한 사건을 기화로 15년 내전의 수렁에 빠져 들었다.
시리아는 이듬해 6월 평화회복 명분으로 레바논에 군대를 보냈다. 이스라엘도 82년 런던 주재 자국 대사 암살 미수사건을 빌미로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몰아내겠다며 레바논을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게릴라는 주변 아랍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뒤이어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및 팔레스타인과 이란 혁명수비대 등이 몰려들면서 레바논은 주변국의 대리 전장터로 전락했다.
이스라엘은 친 시리아계 시아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의 공세와 이스라엘의 대리 군대였던 남부 레바논군의 붕괴로 2000년 5월 남부 레바논에서 완전 철수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집권세력 대부분이 시리아를 등에 업고 있는 상황에서 시리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선거 자체를 미루려는 움직임도 불안함을 느낀 시리아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라미 전 총리가 야당 인사 31명을 포함시키는 거국 내각을 구성할 계획을 세웠다며 갑자기 말을 뒤집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일각에서는 총선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나도 야권이 헤즈볼라의 해체, 경기 회복, 대외 관계 등에 대해서 전혀 준비가 돼있지 않기 때문에 레바논 정국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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