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미술수업 시간이었다. ‘봄’하면 연상되는 색깔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얀 색’이라고 답했다가 크게 혼났다. 연두색이라고 강요 받았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얀 색은 겨울을 의미한다는 가르침에 ‘겨울은 검은 색’이라고 맞받았다. 괘씸죄를 샀던 것일까, 그 후로 미술수업은 나에게 침묵의 시간이었다.
군에 입대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을 때였다. ‘천둥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다가 하루 종일 시달렸다. 입대는 커녕 정신병원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장난어린 협박까지 받았다. 해질 녘까지 혼자 남아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천둥소리는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라는 거짓말을 하고서야 겨우 돌아갈 수 있었다.
며칠 전 창작 뮤지컬 쇼케이스 발표회에 참석했다. 거대 자본이 참여한 제대로 된 창작 뮤지컬의 시작을 기대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크다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했다. 우리 말로 된 노래에 우리나라 사람이 등장하고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국의 뮤지컬과 무엇이 다른지 찾기 어려웠다. 특히 연기자들의 틀에 박힌 연기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사뭇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창작이란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틀에 박힌 교육과 군사문화의 잔재가 여전한 사회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창작물이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뚫고 나오는 새로움, 기발함, 엉뚱함이야말로 진정한 창작의 시작이다. 그런 건방짐이 있지 않고서는 진정한 한국 창작뮤지컬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발전이란 지키려는 힘과 바꾸려는 힘의 균형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황재헌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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