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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5)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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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5)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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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은 마르크스경제학이다. 우파들이 욕하는 ‘빨갱이’경제학이다. 내가 마르크스의 주된 저서인 ‘자본론’을 번역 출판하기 시작한 1989년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자본론’을 가진 사람이거나 일부를 번역 출판한 사람은 구속될 정도로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극우 독재권력이었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이 성공한 뒤에도 그랬으니 그 이전에 어떠했겠는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가난에 관심이 많았다. 매우 똑똑한 친구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저 친구들이 잘 되어야 우리 사회도 잘될 텐데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이 생각은 나아가 우리 사회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다행히 실업고등학교에 들어갔고 그 학교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대학에서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많이 들었지만 도대체 읽을 책들은 거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걸핏하면 간첩단 사건이나 독서회 사건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책들은 출판될 수가 없었다. 나는 일본어를 3개월 동안 공부한 뒤 일본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경성제국대학시절의 일본책들은 대학도서관의 뒷 구석에 많이 쌓여 있었다. 내가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고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잘 파헤친 우수한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이고 위대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사상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재미가 났다. 이런 마음가짐 자체가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죄였기에 1968년에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걸려 반 달 동안 남산의 중앙정보부에서 고생했다. 그 뒤 나는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1972년 2월부터 1975년 5월까지 런던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서점에 마르크스의 책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이 내가 런던대학교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해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항상 마르크스는 천재라고 말한다. 자기 이전의 주요한 경제학자들 100여명(예컨대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아도)의 책들을 읽고 비판하면서 자기의 이론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세운 천재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는가? 첫째 자본주의 사회는 긴 인류 역사에서 볼 때 ‘일시적인’ 사회형태라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를 옹호하는 부르주아경제학자들 또는 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사회이며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그리고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된다는 엉터리학설을 내세우고 있다.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옛날의 원시공동체 사회와 지금의 사회가 어떻게 같은가? 원시공산주의 사회,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 등등의 역사구분은 마르크스의 작품이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두 개의 큰 인간집단으로 구성되며 이들 사이의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사회를 확대재생산하다가 나중에는 멸망시킨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쪽에는 놀면서도 잘 사는 자본가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자본가의 밑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는 처음부터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일부의 사람들이 온갖 부(wealth)를 독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지가 되며 이 거지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임금노동자로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리고 자본가는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에게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며, 노동자들이 순순히 자본가의 독재에 복종하도록 걸핏하면 해고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며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한다. 이런 현상은 1997년 12월의 IMF사태 이후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었고 지금은 더욱 악랄하다. 이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에 대항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노동자계급의 세력이 어떤 특정한 국면에서 자본가계급의 세력을 압도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망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자기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자본가계급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사회 전체의 재산으로 환원한다면 그 사회는 분명히 자본주의 사회는 아니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이상사회(utopia)로서 ‘착취계급이 사라진 사회’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그렸는데, 이 사회는 옛날의 소련도 아니고 지금의 북한도 아닌 것은 확실하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 쪽에서는 사치와 낭비가 넘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빈곤과 자살이 넘치는 사회, 이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사회 대신에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사회’가 훨씬 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가? 이런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관해 마르크스는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본론’을 사회주의 사회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그 책에 나오는 새로운 사회에 관한 몇 개의 묘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성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상품들이 과잉생산되거나 기업들이 도산하여 각종의 상품들이 폐기처분되고 공장이나 기계가 놀게 되며 수많은 노동자가 실업자가 되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물적 인적 자원이 엄청난 규모로 낭비되지만, 계획에 따라 생산하고 분배하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그런 낭비가 생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의 공황이론(crisis theory)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10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가격을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인상한 것을 방아쇠로 각국의 투기적인 상인들과 생산업자들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도산하기 시작함으로써 1930년대에 버금가는 1974~75년의 대공황이 일어났는데, 주류경제학은 이런 규모의 대공황을 전혀 이해하거나 분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류경제학은 시장이 모든 불균형을 가격 변화를 통해 해결하므로 공황이 일어날 수 없다고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보다 크면 가격이 떨어져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어나므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게 되며 따라서 과잉생산 즉 공황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만약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정부가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시장의 ‘실패’를 고칠 수 있기 때문에, 공황은 천연두가 사라진 것처럼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새뮤엘슨이 자신의 저서 ‘경제학’에서 이렇게 기고만장하고 있을 때 공황이 폭발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은 아직껏 계속되는 세계경제의 불황과 그것을 타개하려는 자본가계급과 선진국 정부의 전략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선진국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지구 전체로 진출하여 각축하는 이른바 ‘세계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대규모의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통해 과연 달러를 세계화폐로 유지하면서 세계경제를 지배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가 1945~70년에 유지되었던 복지국가를 해체하면서 대량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며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있지만, 모든 나라들이 이런 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에 세계시장의 규모는 기술혁명에 따른 생산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점 더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상과 사회는 어떤 내용과 형태를 가질까?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충고한다. 좁고 꽉 막힌 사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설계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회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 김수행 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정통으로 공부한 1세대 학자이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모교인 대구상고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녔다.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다시 런던대에 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교수를 거쳐 198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2000~2004년 노동자들에게 교양을 가르치는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총장을 지냈으며 지금도 그 곳의 교수로 그가 배운 지식을 대가없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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