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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盧대통령의 도덕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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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盧대통령의 도덕 외교

입력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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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방문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한 독일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의 언론인들은 내심 적잖이 어리둥절하고 놀란 듯 하다. 논평 기사 첫머리에 지적한 대로 독일을 찾는 한국 대통령의 관심사는 당연히 경제협력과 독일의 통일 경험일 터인데, 노 대통령은 일본과의 외교전쟁에 초점을 맞춘 때문이다. 특히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무리와 함께 사는 것은 세계의 불행"이라고 일본을 비난하면서, 같은 전범국가 독일의 과거청산을 격찬한 것이 오히려 듣기 어색했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이 과거청산과 맞물린 한일 외교위기를 소상하게 설명한 것은 우리 시각에서는 언뜻 자연스럽다. 그러나 FAZ가 ‘즉석 역사강의’라고 표현한 데서 본질적으로 한독 관계와 무관하고 대꾸하기도 난처한 사안을 지루하게 말했다는 시각이 엿보인다. 독일이 모범적 과거청산을 통해 유럽 통합을 이끈 것을 격찬한 것도 기껍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은 도덕적 처신으로 거듭났지만 독일인의 내면에는 가해와 피해자 의식이 늘 엇갈린다. 이런 고통스런 과거사를 길게 언급하는 것조차 관행과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정작 일본과의 역사전쟁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말머리를 돌렸다. 일본과 독일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승격에 대한 입장도 추측에 맡겼다. 그리고 FAZ의 표현으로는 놀랍게도 미국의 북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모든 게 혼란스러웠을 법하다.

묵은 회견 내용을 되짚은 것은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행보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부도덕성을 만방에 폭로하고 비난하는 것만 일관될 뿐, 갈수록 모호하고 모순된 모습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독일 언론이 놀란 북한과 한미 동맹 관련 발언부터 그렇고, 스스로 야심차게 선언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도 비슷하다.

물론 그야말로 거수(巨獸) 같은 강대국들이 21세기 힘의 질서를 놓고 각축하는 틈바구니에서 활로를 찾는 고뇌의 몸짓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과장한 것처럼 세력 균형을 좌우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일 수는 없다는 의지가 앞선 데서 비롯된 혼란일 수 있다. 자주적 행보로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은 절박하지만 어느 전문가의 지적처럼 아직은 돌고래 정도에 불과한 탓에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오락가락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국가 전략을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를테면 전통의 한미일 3각 틀을 벗어나 한중미 3각의 균형자 노릇을 할 것처럼 떠들다가 슬며시 한중일 3각 쪽으로 초점을 바꾼 것이 그렇다. 객관적으로 동북아 세력경쟁의 중심은 미중일 3각 관계이고, 우리는 대만이나 북한에 비해 운신의 여지가 있을 뿐이다. 그만큼 냉철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일본의 부도덕성 공격에 열중하는 것은 그의 말대로 우리의 도덕성을 무기로 동아시아의 정치경제 세력권 재편경쟁에서 일본을 제치려는 의도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도덕 외교는 의도가 진실하더라도 유치한 시도에 그치기 쉽다. 당장 해외 파병 등과 관련한 우리의 국가 행보가 남달리 도덕적인 게 없고, 국제 사회가 도덕에 집착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한층 문제는 정치든 외교든 도덕성을 앞세우는 것은 흔히 국민의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부추겨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진보정치의 도덕적 힘에 의존하는 정권일수록 국민의 도덕적 신뢰가 소진될 때마다 실용보다 도덕을 치켜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덕 정치든 도덕 외교든 모두 말랑말랑한 선택이 아니다. 확고한 행동계획과 뚜렷한 성과가 없으면 이내 파국에 이른다는 역사의 교훈을 정부와 사회 모두 되새길 때라고 본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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