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1,000명 정리, 한중 군사외교 강화 방침, 자이툰 부대원 270명 감축, 전쟁예비물자(WRSA)계획 폐지 등.
한미 군사동맹을 의심케 하는 이슈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국방부가 노이로제 상태에 빠졌다. 급기야 신현돈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의 WRSA계획 폐지 통보를 받고도 국방부가 1년 동안 감췄다’라는 내용의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는 안보상업주의로 대미협상력만 약화시킨다"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국방부의 공개적이고 강도 높은 해명은 오히려 "정말로 ‘WRSA계획 폐지’ 등의 사안을 둘러싸고 한미 군사동맹에 말 못할 갈등이 생긴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 연관성 없는 별개의 사안?
국방부 당국자는 "사안별로는 양측의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일련의 사안들은 모두 별개의 문제"라고 못을 박았다. 동맹의 균열이 순차적으로 표출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자이툰 부대원 감축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미 국방부에서 이유없이 파병규모를 줄였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는 지적이 있어 최근 미 국방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는 자리에 해명자료를 잔뜩 준비해 갔지만 한마디 질의나 반박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사전협의가 없었다면 그들이 가만 있었겠느냐"며 "동맹 이상기류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WRSA계획 폐지 논란은 해석이 과도했던 측면도 없지 않다. 당초 WRSA계획의 폐지가 지난해 처음 우리 측에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는 데 실제로는 미국이 이미 2000년에 WRSA탄약의 구매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WRSA계획의 폐지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미군의 비용절감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이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하지만 1일 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이 "한국군 근로자 1,000명을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사정이 다르다. 캠벨 사령관 스스로 이 조치의 배경으로 "합의된 방위비 분담금으로는 주둔비용 소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밝힌 데서도 미국 측의 불만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당국자도 "협상을 하다 보면 이견을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갈등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 동맹조정의 성장통
사안마다 성격이 각기 다르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모조리 한미 동맹 균열조짐’이라는 분석은 계속 힘을 얻고 있다. 한미갈등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심각한’ 동맹 이상이라는 지적이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가 외교안보정책의 기조로 중국에 접근하는 내용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제시하면서 양국관계가 악화했다"며 "미국이 우리의 새 독트린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사안들이 불거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의 조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들 사안이 집중적으로 불거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양국은 한미안보정책구상(SPI)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논의하면서 장외에서도 밀고당기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안 된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정면으로 반박했으며 이후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동북아균형자론을 집중 성토하는 등 적잖은 진통을 겪고 있다. 이로 미뤄 일련의 사안들을 동맹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성장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안보외교의 중심축 시급
문제는 아직 동맹조정이 시작단계라는 점이다. 한미 양국은 5, 6일 하와이에서 열린 제2차 SPI에서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 변화 등을 고려해 한반도 안보상황 평가단계를 설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르면 다음 회의에서 안보상황 평가단계를 확정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한미동맹 재조정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동맹조정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맹조정에 임하는 우리 측의 준비소홀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SPI회의 중에 별도 트랙으로 진행하는 전략적 유연성 협의에 미국은 국방부 관리가 대표지만 우리는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이 나서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국방정책보다 상위인 안보전략에 관한 사안으로 외교부가 맡는다는 논리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방위비분담금 협상도 협상 전문인 외교부로 넘긴 뒤 국방부와 보조를 맞추지 못해 분담금 삭감에는 성공했지만 주한미군 근로자 고용문제를 떠안았다는 지적이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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