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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덤壁碑 의미와 파장/ 고대사 공백 메울 史料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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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덤壁碑 의미와 파장/ 고대사 공백 메울 史料 될수도

입력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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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공개된 고구려 벽비(壁碑)가 진품임이 공인될 경우 우리 고대사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벽비에 나타난 3세기 동천왕 대의 기록은 삼국사기 등에도 아주 간략하게만 기록되어 있고, 그나마 알려진 부분도 상당부분 중국측 사료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벽비 명문의 해석이 완전히 이뤄지면 동천왕 20년 고구려가 위(魏)의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 丘儉)의 침입을 막아내 강토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역사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을 분명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으로 미뤄 이 벽비는 ‘도지질공(刀之叱公)’으로 읽힐 수 있는 무덤의 주인공이 전란 당시 세운 공훈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비에서는 광개토대왕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고구려 건국자로서의 추모왕(鄒牟王·주몽)에 대한 인식도 엿볼 수 있으며, 관구검의 기공비(紀功碑)에 등장하는 졸본(卒本), 부내성(不耐城), 위나암성(尉那巖城) 등의 당대 지명들도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명문은 고구려의 이체자(異體字)나 이두, 고유명칭 등 3세기 당시의 귀중한 문자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고고학과 사학계의 연구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진품 여부가 더욱 중요해진다. 토지박물관측이 진품으로 확신하는 근거는 열형광분석(TR Dating) 등 과학적 시험자료 외에도 여럿이다. 특히 명문의 서체나 서법이 요즘 흉내낼 수 없는 고대의 것이라는 점이다. 판독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손환일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서예사) 교수는 "벽비에 사용된 서체나 서법에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나 광개토왕비에 나타나는 특징들이 보인다"며 "벽비가 발굴된 1930년대든 지금이든 이러한 문장과 글씨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예를 들어 한(漢)대의 목간에서 보이는 필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일백 백(百)자의 경우 요즘 필법으로는 한일(一)자를 쓴 후 점을 찍고 세로 획을 그은 후 기역자를 쓰고 한일을 두개 긋는다. 그러나 벽비에서는 ‘3’자처럼 오른 쪽 획을 먼저 쓴 후 니은자를 쓰고 가운데 점을 찍었다. 해년(年)의 세로 획을 왼쪽으로 휘어서 끝낸 것, 궁 궁(宮)과 마루 종(宗)의 갓머리를 둥글게 쓴 것 등은 모두 중국 고대의 필법으로 현대에서는 쓰이지 않는 필법이다. 또 광개토왕비에 쓰인 것과 같은 형태의 글자도 여럿이다. 도읍도(都)의 우부 방을 입구(口)자 2개로 표현한 것, 외성 곽(郭)의 우부 방을 도읍 읍(邑)자로 표현한 것, 뜻 의(意)자의 위쪽을 작게 아래쪽을 크게 한 ‘상소하대’형의 결구법 등이 그것이다.

현재 글자체와 현저히 다른 바람 풍(風)이나, 형상 형(形)을 우물 정(井)과 석삼(三)자로 표현한 것, 전할 전(傳)의 왼쪽 획을 두인 변으로 쓴 것 등은 이 벽비가 제작될 무렵인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필체이다. 당길 인(引)의 오른쪽 획을 칼도(刀)로 쓴 것 같이 중국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글자도 있다.

현대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簡體字)가 등장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손 교수는 "간체자는 현대에 만든 것도 있으나 90%이상을 고대 중국,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에 쓰던 글자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위작의 근거로 들 수 없다"고 반박했다. 손 교수는 "서체만으로도 진품이 아니라고 말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이 벽비는 지금까지 가장 오랜 고구려 명문이 발견된 덕흥리 고분보다도 앞선다"고 말했다.

벽비의 제작기법도 진품 주장을 뒷받침한다. 낙랑시대 유물을 전공한 도쿄(東京)대의 정인성 박사는 "니질 대토에 ‘셔드’라는 물질이 혼입되어 있고, 점토띠로 판을 성형한 점이나 벽비의 못을 박기 위해 구멍을 뚫은 점 등이 고대유물에서 발견되는 방식 그대로"라고 밝혔다.

반면, 서울대 노태돈(국사학) 교수는 "진품일 경우 국내 금석문 중에 제일 오래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러나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진품 단정에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박물관의 심광주 실장은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만주의 고구려 유적에서 수많은 명문들이 나왔다는 소문이 있으나 정작 공식보고서에는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면서 "광개토왕비라는 거대한 금석문을 남긴 고구려가 그보다 앞선 시기에 수많은 명문을 남겼으리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벽비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토지박물관 특별전에는 이 벽비 외에 다른 곳에서 출토된 고구려 도용(陶俑·345년), 베개인 도침(陶枕·270년), 인장 등 광개토왕비보다 이른 시기의 고구려 명문이 새겨진 유물이 다수 나온다. 또 고려 공민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순금잔과 고려의 범종, 청동9층탑 등의 금속공예품들을 포함, 총 400여점이 전시된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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