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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외교부부터 설득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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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외교부부터 설득시켜라

입력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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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외교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때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TV 모니터를 통해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았다.

외교부 보고가 끝나고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설명하기 시작할 때였다. 마침 카메라가 외교부 간부들을 화면에 잡았다. 노 대통령이 "동북아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지로 역설하는 순간, 화면에는 한 외교부 간부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 잡혔다.

이를 지켜본 직원들은 "어, 저러다 다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한다. 당사자는 카메라가 자신을 향할 줄을 몰라 그런 반응을 드러냈고, 후에 한국정책방송인 KTV를 통해 일반에 방영될 때는 그 대목은 빠졌다고 한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새로운 전략개념인 균형자론의 위치를 잘 말해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 해프닝에서 드러나듯 입안자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열의와는 달리 집행자인 외교부는 소극적이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하다.

이런 자세 때문에 외교부는 늘 개혁대상으로 지목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걱정한다. 중대한 외교전략이 왜 충분한 토론도 없이 나왔느냐, 조용히 전략을 바꾸면 되지 굳이 공표할 필요가 있느냐는 절차적 문제제기도 있지만, 본질적인 우려는 비현실적인 공론(空論)의 위험성에 맞춰져 있다. 힘과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 중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조정하겠다는 발상도 그렇고, 외교의 상수(常數)였던 한미 동맹을 변수(變數)로 놓고 한중 관계와 대등하게 다루겠다는 듯한 뉘앙스도 위태위태하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정권의 핵심부로 가면 패배주의로 치부된다. 한국도 이제는 마땅히 할 말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련한 외교관일수록 고개를 젓는다. 그들은 "독일도 통일 과정에서 판을 흔들지 않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가장 중시했다"고 말한다. 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 이주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떠맡고, 서독 주둔 미군을 동독으로 전진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 소련을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4강의 이해가 얽혀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며 통일을 이뤄내려면 불안정성의 최소화에 전력을 다했던 서독의 전략은 참고할 만 하다. ‘반금친명(反金親明)’을 내세우다 삼전도 굴욕을 당했던 인조, 북진통일을 외치다 단숨에 낙동강까지 밀렸던 이승만 정권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황당해 하는 외교부 간부를 설복시키지 못하면서 국민과 동맹국인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지, 굳이 지금 판을 흔드는 이유가 무엇인지…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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