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낮 우뚝 솟은 바위 절벽 앞으로 하얀 백사장이 다소곳한 전북 부안 변산반도 채석강. 바닷물이 발목까지 밀려들자 아이들이 "와~!"하고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바람이 유난히 센데다 파도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린이들은 박수를 치며 마냥 좋아했다.
장애어린이 60여 명과 대한의사산악회 회원 30여명, 장애인복지형상회 자원봉사자 30여 명 등 120여 명은 이날 오전 서울을 출발했다. ‘아름다운 희망여행’에 나선 것이다. 일행은 채석강을 견학하고 내변산에 올라 자연관찰도 하면서 직소폭포를 마주했다.
의사 선생님과 함께 2인 1조가 돼 산을 오르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났다. 이날 여행은 대한의사산악회가 장애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1급 발달장애(자폐증) 어린이 김창민(11·경기 부천 부인초등 4년)군은 백경열(56) 대한의사산악회장의 손을 내내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에서 정형외과를 운영하는 백 회장은 지난 2월 개인적 친분을 통해 장애인복지형상회 장애아동들을 알게 됐다. 이번 여행은 경기 안양 수리산 등산에 이어 두 번째. 높은 곳에 올라가길 좋아하는 창민이가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그의 손가방엔 청진기가 들어 있었다.
창민이가 자폐아 진단을 받은 것은 생후 3살 때. 창민이는 짧은 문장밖에 구사하지 못하지만 두 자릿수 곱셈 암산에 능하고 피아노는 체르니 30번까지 치는 재주꾼이다. 줄넘기를 500개 이상 단숨에 하고 10㎞ 달리기도 대여섯 번 성공했을 만큼 운동을 좋아해 별명이 ‘꼬마 몸짱’이다.
어머니 이분순씨는 이날 하루 종일 "창민이에게 봄을 만끽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신 의사분들께 감사한다"며 "장거리 여행이 힘들긴 하지만 자폐증 어린이들에겐 새로운 체험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도움이 된다"고 기뻐했다. "전쟁 치르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이씨는 창민이가 커서 직업을 갖고 자립하는 것이 소원이자 삶의 목표다.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하지만 직업은 몰라도 여가생활에서라도 뭔가 잘하는 것을 꼭 만들어 주고 싶어요."
자폐증 어린이는 운동과 야외활동을 많이 해야 사춘기를 잘 넘길 수 있다. 보통 학생들은 수다로 풀거나 하다 못해 신경질로라도 발산할 수 있지만 자폐아들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50~60%가 사춘기 때 경기를 자주 일으킨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창민이는 비로소 백 회장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초콜릿도 주고 하면서 꾸준히 다가가자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을 연 듯했다. "산에서 느끼는 성취감을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이 어린이들한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공공장소에서 자폐아동이 다소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표현할 방법이 막혀 있지요. 어른들도 미국 가서 영어 못 하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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