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재 단순개입 넘어 적극 주도했나
한나라당이 10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참여를 철도청에 제의했다"는 철도청 회의록 문건을 공개하면서 유전개발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회의록만 놓고 보면, 이 사건에서 이 의원의 역할은 ‘단순 개입’을 넘어선 ‘적극적 주도’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유전개발사업 참여의 반대급부로 북한 건자재 채취반입사업을 보장해 주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해 8월12일 철도청 신규사업 설명 회의에서 왕영용 사업개발 본부장은 신광순 당시 철도청 차장 등 철도청 간부들을 상대로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의 사업참여 제의가 유전개발사업의 참여 동기"라고 분명히 말했다. 아울러 그는 사업참여의 반대급부로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 참여’를 역으로 제의했다고 말했다. 역제의 대상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문맥상으로는 그 대상은 이 의원이다.
이날 회의는 철도청이 사업 참여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신광순 당시 차장은 엄청난 수익, 북한 건자재 사업을 이유로 철도교통진흥재단을 통해 사업에 참여키로 결정한다. 이광재 의원이 사업참여의 결정적 계기였음이 회의록 곳곳에서 확인된다.
한나라당은 "이 의원이 굳이 철도청에 참여를 제의하는 등 유전개발사업을 주도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9월 러시아 방문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권영세 의원은 "유전사업에 관심이 많던 이 의원이 철도청의 유전개발 사업 참여를 노 대통령의 방러 성과, 자원외교의 성과로 삼기 위해 적극 제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왕 본부장이 이날 회견에서 밝힌 대로 사업추진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이 의원을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국가기관이 600억원대 사업 투자를 결정하면서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한나라당은 "일개 공무원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이 같은 엄청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사전에 입을 맞춰 왕 본부장이 모든 것을 덮어쓴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철도공사가 반대 급부로 요구한 북한 건자재 사업의 준비를 했다는 점도 왕 본부장의 자작극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왕 본부장의 거짓 자작극이었다면 철도공사가 북한 건자재 사업을 위한 실제 행동에 들어갔겠느냐는 것이다. 공사는 북한산 모래를 경의선 철로를 이용해 운송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다. 뭔가 믿는 든든한 힘이 있지 않고서는 추진하기 어려운 일들이어서 북한 건자재 사업은 새로운 의혹이 되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 왕영용 사업본부장 회견/"사업추진 위해 내가 ‘李의원 제의’ 꾸며"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에서 핵심 역할을 한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은 10일 철도공사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8월12일 철도청 회의에서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사업을 제안했다고 얘기했으나 이는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의원이 사업을 제안한 것처럼 하는 것이 신뢰성을 줘 철도청이 사업 참여를 결정하는데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왕씨가 사전교감 없이 공식석상에서 이 의원을 거명할 수 있었느냐에 대해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왕씨는 이 의원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회의가 열릴 당시 이 의원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는 등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며 "이후 자금을 유치하는 문제에서 국가의 석유위기관리자금을 쓰는 것이 다른 자본유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이 의원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10월께 사무실로 찾아갔다"고 말했다.
왕씨는 "이 의원을 만났더니 ‘알았다. 잘해보라’고 얘기했으며 그런 (국가)자금을 쓸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한번 검토해보겠다’ 정도로만 반응했다"고 말했다. 왕씨는 또 "이 의원은 당시에도 (철도청의 유전개발사업 참여를) 이해 못하는 분위기였으며 이후로는 안 만났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이 의원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에서 왕씨를 만났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고 "신광순 당시 철도청 차장이 찾아와 ‘철도청이 왜 유전사업을 하느냐’고 물어봤다"고 밝혔으며, 신 차장은 "자금 문제 등을 얘기하려 했으나 이 의원이 잘 모르고 있어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철도청 관계자는 "유전개발사업 참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느쪽에서 진행하는 것이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며 "이에 대해 왕씨가 외교안보 쪽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대부분의 참석자도 그렇게 이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 의원의 이름이 나왔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왕씨가 사업을 함께 추진하게 될 민간사업자를 외교안보 쪽에서 소개받았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철도재단 법률자문 법무법인 우현/ 與의원이 변호사로 소속
한나라당은 10일 러시아 알파에코사가 지난해 9월 16일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철도재단)의 법률자문을 맡은 변호사 2명 앞으로 보낸 팩스를 공개했다. 팩스에는 수신인이 김성용과 헤이젤 서로 돼 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러시아측과의 계약 성사직후 철도재단의 법률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우현의 대표변호사, 헤이젤 서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인 서혜석 의원이다. 서 의원은 올 1월 비례대표를 승계했으며 우현 소속 미국변호사였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영문 팩스는 여권에서 광범위하게 서로 협조해 이번 사업을 추진했다는 증거"라고 공세를 취했다.
공교롭게도 우현에는 우리당 민생경제특위 위원과 강원도당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황석희씨가 상임고문으로 있다. 황씨는 이광재 의원과 동향(강원)으로 지난 총선 때는 우리당 비례대표 후보 신청을 하기도 했다.
서 의원과 황씨는 철도재단에 계약금을 대출해 준 우리은행과도 인연이 있다. 서 의원은 2002년 사외이사를 지냈고, 황씨는 2003년 우리신용카드 대표이사를 지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출 과정과 전혀 관계가 없고 이미 은행과 인연이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서 의원 측은 "이번 계약 건과 관련해 소속 변호사로서 자문만 한 정도"이며 "수임료도 못 받고 괜히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 측은 "작년 총선 때 우리당 민생경제특별본부 부본부장을 함께 지냈던 황씨를 우현에 모셔왔다"고 밝혔다.
조경호기자 sooyang@hk.co.kr
■ 이광재 "전혀 사실무근"/ "철도청 자료는 작년8월 이지만 내가 철도청 인사 만난 건 10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10일 한나라당이 철도공사 내부문건을 근거로 자신이 러시아 유전사업 참여를 제의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려면 근거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이날 "한나라당이 제시한 문건에 ‘이 사업을 주도하는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에서 철도청에 사업참여를 제의했다’고 돼 있는 데 내가 산자위 소속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라며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 의원은 "내가 철도청 인사를 최초로 만난 것은 10월 하순으로 이미 언론에서도 확인한 사실"이라며 "그런데 한나라당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8월에 사업을 제안한 것처럼 돼있는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않는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이어 철도공사가 러시아 유전사업 참여에 따른 대가로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 참여를 원했다는 문건내용에 대해서도 "사할린 유전사업은 러시아와 관련된 사업인데, 반대급부로 북한 건자재 사업을 받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느냐"며 "러시아와 북한이 같은 정부냐"라고 황당해 했다. 이 의원은 "당초 오늘까지 박근혜 대표에게 내가 압력을 행사 또는 권유했거나 은행대출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했는데, 박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며 "한나라당과 박 대표가 정확한 증거를 대지않을 경우 폭로정치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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