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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 월포위츠 임명이 낳은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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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고/ 월포위츠 임명이 낳은 역설

입력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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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임한 폴 월포위츠가 세계은행(IBRD) 총재로 임명돼서는 안된다는 데에 대해 이른바 좌파 진영이 모처럼 의견 일치를 보았다. 진보적인 인사들은 한결같이 월포위츠 주도 하의 세계은행은 미국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다른 인사가 지명됐다면 저개발국가와 빈국을 위한 국제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지프 슈티글리츠 같은 학자는 에르네스토 세디요 전 멕시코 대통령이 세계은행 총재 적임자라고 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을 적임자로 점찍었다.

그러나 이런 희망 섞인 바람은 다 세계은행의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원래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설립은 미국 경제학자 해리 화이트의 아이디어라고 전해지고 있다. 2차 대전 후 세계 경제 재건을 위한 미국 측 협상 대표였던 그는 연합국 수뇌부에 국제경제기구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고,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의 주장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기구들이 채권국보다는 채무와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나라들에게 세계 경제 안정화의 책임을 부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44년 브레튼 우즈 모임 직전에 연합국 대표들에게 "돈을 많이 낼수록 투표권이 많아진다"며 "미국은 어떤 결정도 저지할 수 있는 충분한 표를 가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세계은행에서 미국 등 주요 경제대국의 거부권 행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월포위츠가 임명된 날 세계은행은 라오스에 수력발전용 댐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그런데 이 댐이 건설되면 물이 범람할 경우 6,000여 명이 집을 잃고 물에 쓸려 내려갈 수 있고, 12만 명이 생계를 잃고 거지 신세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계약이 체결되면 재미를 보는 것은 서방 경제 대국의 기업들이다.

물론, 댐 건설은 월포위츠가 임명되기 전에 결정된 사안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계은행의 문제는 누가 운영을 담당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사회가 미국과 영국에 장악돼 있는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월포위츠가 총재에 임명된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그의 임명은 세계은행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정책 결정 과정의 비민주적 측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민주주의와 올바른 국가 통치를 후진국에게 강요하지만 실상 자체 조직은 중세적인 비민주적 행태로 운영되고 있음을 드러낼 수 있다.

둘째, 슈티글리츠나 조지 소로스 등이 갖고 있는 생각, 즉 세계은행이 세계의 저개발국가 및 빈국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지극히 순진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임명 파동이 미국의 이른바 신보수주의자들이 스스로 자충수를 둠으로써 의외로 미국 주도의 세계은행이 국제 경제질서에 끼치는 폐해를 선전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다자주의적 국제경제란 미국의 일방주의가 다자적 틀이라는 외피만을 걸친 것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신보수 세력이 과거 루스벨트와 트루먼이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면서 나름대로 국제적인 틀을 갖춘 세계 경제질서를 위해 지혜를 발휘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미국만의 이익이 보장되는 국제 경제질서를 확립하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조지 몬비오 英 가디언지 국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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