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쓰는 물건들을 단순히 다시 사용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내 손으로 재창조한다는 상상력을 가져야 진정한 재활용이 이뤄집니다."
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YMCA 2층의 한 강의실. 환경단체인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가 재활용 전문가 양성을 위해 마련한 ‘되살림 강좌’가 처음 열렸다. 이 날 ‘에코 디자인’을 주제로 나선 강사는 드라마 ‘겨울연가’로 더욱 유명해진 남이섬을 관리·운영하는 ㈜남이섬의 강우현(52) 사장. "남이섬에서 매일 작업복만 입고 지내다 모처럼 양복을 걸치고 서울에 나오니 촌사람 티가 더 나는 것 같네요." 섬의 화창한 봄 이야기로 말머리를 꺼낸 강 사장은 재활용에 관한 고정관념부터 버릴 것을 당부했다. "고장난 우산 천으로 앞치마, 시장바구니를 만들더라도 상상력을 더하면 예술작품이 됩니다. 한때 회생 불가능 판정을 받은 남이섬을 유명한 관광지로 ‘재활용’한 것도 결국은 창조적인 상상력 덕분이었지요."
강 사장의 재활용 강의는 자연스레 남이섬을 재활용 천국으로 탈바꿈시킨 이야기로 옮겨갔다. "월급 100원 사장을 자처하고 섬에 들어가 처음으로 한 일이 흙가마, 유리가마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버려진 고철이나 유리는 녹여서 다시 썼고, 폐목, 빈 병들은 간판이나 벽돌 대용으로 재활용했지요. 처음엔 돈이 모자라 다시 쓰고 고쳐 쓰고 하던 것이 나중엔 습관처럼 몸에 배더군요."
남이섬과 재활용이라는, 어쩌면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단어를 ‘예술적인 재활용’으로 묶어 낸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강 사장의 직업은 딱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다.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그림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문화운동가로 활동했고, 1990년대에는 재활용 종이 사용을 주창하며 환경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다져진 ‘상식을 벗어난 재활용’ ‘예술적인 재활용’ 철학은 지난 4년 동안 남이섬에서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더니 결국 ‘재활용 천국’으로 활짝 피어났다.
그의 재활용 철학은 남이섬을 가장 자연에 가깝게 바꾸는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남이섬에선 이제 전봇대, 전깃줄, 쓰레기통을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카바레였던 건물은 굳이 철거하는 대신 예술가들의 손길을 더해 멋들어진 전시장으로 바꾸었다. 섬 구석구석 뒹굴던 쇳조각들도 녹이고 붙이고 해서 조각품으로 변신시켰다.
강 사장은 올해 남이섬의 문화사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겨울연가’ 촬영지로 굳어진 이미지를 벗기 위해 여러 나라의 서적을 모아 소개하는 책 나라 축제, 세계 각국의 날 행사를 열고 내셔널 데이에는 외국인들도 초청할 생각이다. 현재 운영 중인 안데르센 홀, 유니세프 홀, 레종갤러리 등 전시관과 도자기, 목공, 염색, 유리, 한지공예 등 체험학습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수강생인 녹색가게 운영자 문영미(63)씨는 "남이섬에 그렇게 많은 재활용 아이디어가 숨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처녀 때 가보곤 못 가 봤는데 조만간 꼭 들러봐야겠다"고 말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