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 노동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고용 문제다.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에게 큰 병이나 사고 없이 가족과 함께 무사히 평생을 마친다는 것은 소박하지만 이루기 어려운 꿈이 돼 버렸다.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고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도 평생학습법까지 만들었지만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먼 얘기일 뿐이다.
‘사오정’과 ‘오륙도’라는 우스개가 당연시되는 요즘 60세 정년까지 직장에서 버틴다는 것은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무한정 성장하는 기업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통하여 고용을 보장한다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리고 경총에서도 2005년 경영계 임금조정권고에서 ‘중고령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기업의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5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경총의 지침은 일견 임금을 양보하면 고용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본래 임금피크제는 연공임금과 평생고용을 양대축으로 지탱해 온 일본 노사관계의 산물이다. 일본은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연공임금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일정 연령에 도달한 근로자에게 정년을 연장해 주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하는 제도를 실시한 데서 임금피크제가 유래한 것이다. 일본에서 실시하는 임금피크제는 정년 보장을 넘어 정년을 연장한다는 조건 하에 임금 양보와 교환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임금피크제는 다르다. 우리나라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름없는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도입되고 있다. 일방적인 정리해고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금전적 유인을 주고 반발을 최소화하는 수단으로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을 도입했으나 이 또한 강제적 자발성이라는 외피로 포장만 했을 뿐 해고와 다름없는 것이다.
그 대체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일본과 달리 정년연장형이 아닌 정년보장형에 그치고 있다. 즉 정년까지 일하게 해 줄 테니 임금을 삭감하자는 것이다. 아니면 명예롭게(?) 퇴직하라는 은근한 협박이 따른다. 우리나라 임금피크제는 사실상의 정년단축만 초래할 뿐이다. 노사관계 안정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임금삭감과 생산성이라는 일방적 사고를 벗어나 노동자의 고용과 생활안정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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