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으니 아직도 눈을 못 감았을 거야."
8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옛 서대문형무소) 앞. ‘임을 위한 행진곡’ ‘동지가’ 등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5개 시민단체와 주최자인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관계자 100여명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들을 위해 추도 묵념을 올리고 있었다. 30년 전 이날은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송상진 우홍선 여정남 등 8명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날. 이들은 손 써볼 틈도 없이 이튿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인혁당 사건(1964년) 연루자들이 조직을 재건하고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했으나 유족과 인권단체들은 조작 의혹을 계속 제기해 왔다.
매년 경희대에서 열리던 추모제는 20주기에 이어 올해 2번째로 사형집행 현장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현장을 참배하며 고인들의 민주화 업적을 기리고 억울한 죽음을 되새겼다. 이날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 전창일 사무국장이 추모사에서 "결백이 밝혀져도 다시 살아올 수 없는 저 머나먼 함성…. 하늘도 울고 땅도 운 그날, 3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날, 나는 목놓아 외친다"며 고인 8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자 식장은 일순 엄숙해졌다. 추모제는 참가자들이 사형장 앞 울타리에 추모사가 적힌 종이와 흰 국화를 매단 뒤 진관 스님의 인도로 사형장 안을 참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시각 유가족들은 사형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불참한 채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사형 현장을 둘러보는 게 너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최근 국정원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2000년부터 소청이 잇따랐지만 국정원 자체 조사 등을 이유로 판단을 수년째 미루고 있다.
2002년 12월 유족들이 "인혁당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를 근거로 법원에 제기한 재심청구도 지지부진하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이기택 부장판사)는 "자료가 워낙 방대한 데다 최근 재판부마저 변경돼 자료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올해 안에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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