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수사 전망
청와대가 8일 철도공사(옛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 의뢰 방침을 밝힘에 따라 향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검찰은 사건이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으나, 그 동안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여러 의혹들을 주시해온 데다 감사원에서 한차례 조사를 한 만큼 수사는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검찰 수사는 철도공사가 석유공사나 다른 민간기업마저 포기한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서둘러 참여한 배경을 밝히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와 전대월 하이앤드 사장이 추진하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은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의 소개로 유전 전문가 허문석씨가 참여하면서 탄력을 받았고, 철도공사도 허씨의 제의로 지난해 8월 뒤늦게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러시아 유전개발업체 인수 계약이 파기되면서 사업계획은 휴지조각이 됐고, 철도공사는 계약금 620만 달러 가운데 350만 달러를 떼일 처지에 몰렸다. 따라서 철도공사의 투자가 경영상의 오판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외부 입김에 의한 것인지가 규명되어야 한다. 철도공사는 계약금을 은행 대출로 마련해야 할 정도로 재원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서둘러 러시아 업체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번 사업참여는 철도공사 내 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사업개발본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했다는 내부 지적도 나온 상태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리베이트설과 대출외압설도 검찰 수사에서 진위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9월 유전사업을 추진하면서 설립한 자회사 코리아크루드오일(KCO)의 지분 중 전씨(42%)와 권씨(18%)의 출자지분 60%를 원금의 20배에 달하는 12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120억원 중 일부를 철도공사 고위인사가 리베이트로 되돌려 받기로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사업을 운영하다 부도를 낸 전씨가 참여하는 KCO에 우리은행이 유전개발업체 인수 계약금 65만 달러를 대출해준 경위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최대 관심사는 역시 정치권 인사의 연루 여부다. 평소 에너지 개발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이광재 의원이 본인의 해명처럼 단순히 사람을 소개해 준 정도에 그쳤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사업에 관여했는지가 가려져야 한다. 감사원은 이 의원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야당이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검찰 수사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성난 이광재 朴대표에 "10일까지 증거 제시하라"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관여의혹을 받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7일 관련자의 녹취록을 공개한 데 이어 8일 "감사원이든 검찰이든 당당히 조사 받아 의혹을 풀겠다"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이 의원은 특히 한나라당이 ‘오일게이트’로 규정하며 정치공세를 본격화하는데 맞서 "철도공사에 압력을 행사 또는 권유했거나 은행대출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10일까지 제시하라"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표도 최고의 책임을 지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박 대표가 ‘드러난 것 이상이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며 "만약 박 대표가 증거를 제시하면 책임질 수 있는 최고의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이 부풀려지고 있고 급기야 국회가 다음주부터 폭로정치의 장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나라당이) 면책특권을 이용해 무한정의 폭로공세를 펼쳐 국민은 없고 정쟁만 있는 낡은 정치가 다시 시작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대표가 낡은 정치를 하고 있으며 저는 낡은 정치의 부활을 온몸으로 막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이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철도공사가 석유사업에 뛰어든 다음에야 사실을 알았다"며 "내가 한 일은 전대월(하이앤드 사장)에게 허문석(코리아크루드 오일 대표) 박사의 연락처를 가르쳐준 것뿐"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업에는 뭔가 이권이 개입됐고 때문에 일이 불거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명확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 검찰에 수사의뢰 배경은/ 측근비리 의혹 확산 靑"방관 못해"
청와대가 8일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 의혹에 대한 조사 주체를 감사원에서 검찰로 바꾸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대통령 측근 비리’로 인식되는 흐름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사업에 대한 의혹이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개입설을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되자 청와대는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청와대는 감사원 조사만으로는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할 수 없다고 보고, 사법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이를 수사토록 함으로써 의혹 확산을 막겠다는 생각이다.
청와대는 아울러 유전 개발 의혹에 공무원 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다수 연루돼 있어 전모 규명을 위해선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감사원은 주로 공무원의 업무에 대해 조사하는 기관이므로 민간인 조사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민간인을 참고인으로는 조사할 수 있으나,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검찰은 감사원과 달리 영장을 발부 받아 압수·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혹의 단서를 찾는 데 유리하다. 감사원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조사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도 조사주체 이관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수사를 벌일 경우 이광재 의원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이 의원측과 조율을 거친 뒤 검찰 수사의뢰를 결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야당의 문제 제기와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이광재 의원을 엄호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이 의원을 집중 부각시켜 정치 쟁점화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도덕성을 흠집 내기 위해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겁하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과 가깝다고 해서 보호 받아서도 안 되지만 부당한 의혹을 덧칠해서 희생양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왕영용 철도公 사업본부장 귀국/ 국회의원 외압 없었다 러社 손실 보전해줘야
러시아 유전개발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은 8일 "사업성이 있고 경영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참여하게 됐으며 국회의원의 외압은 없었다"고 정치권 연계 의혹을 부인했다.
왕씨는 러시아 회사와의 계약금 반환 협상을 마무리한 뒤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기자회견을 갖고 "하늘에 맹세코 의원의 외압이나 전화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철도교통진흥재단이 자체적으로 경영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철도공사의 석유비용이 연간 2,500억원이라는 사실이 유전사업에 뛰어든 배경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절반에 못 미치는 계약금만을 돌려 받게 된 경위와 관련, 왕씨는 "러시아 알파에코 그룹이 계약 파기는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인정했다"며 "다만 우리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인수를 추진하던 후발업체들이 의혹을 품게 되자 알파에코에서 가격을 깎아줬고 그 손실을 보전해주는 차원에서 계약금을 일부만 돌려 받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 업체와 유전인수 계약을 하면서 당시 김세호(건설교통부 차관) 철도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사업 제안은 내가 했다. 철도재단에서 하는 사업을 일일이 철도공사에 보고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분들(당시 김세호 청장과 신광순 차장)은 잘 모른다"고 해명했다.
한편 왕씨 입국과정에서 철도공사 직원들이 편법으로 임시출입증을 발급받아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보안구역에 들어온 뒤 "본부장을 보호한다"며 기자회견 중인 왕씨를 데리고 나가려다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때문에 공사 직원 1명이 공항 당국에 입건됐으며, 공항경비대가 출동해 사태를 수습하고 왕씨를 입국 시켰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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