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방송은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9·11 테러 이전부터 이라크를 침공해 석유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최근 보도했다. 어떻게 이라크 석유를 장악할 것인가를 놓고 미 국방부의 ‘네오콘’들과 석유 기업들이 적잖은 정책 논쟁까지 벌였다고 한다. 딕 체니 부통령이 한때 최고경영자로 있던 핼리버튼의 계열사 켈로그브라운앤루트, 로널드 레이건 정권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가 입각 전 사장을 지낸 벡텔 등은 지금 이라크 재건 사업의 중추기업이다.
부시가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진실을 감추는 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미국의 대외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을 통해 제법 자주 들어온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좀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반신반의하거나 아예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세 부류의 사람 모두에게 권할만한 책이 한 권 번역 출간됐다.
‘경제저격수의 고백’을 쓴 존 퍼킨스는 1971년부터 80년까지 미국 기업과 정부의 이익을 위해 세계를 누비며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계획을 돕는 경제전문가로 활약했다. 미국의 이익도 챙기고 개도국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의 임무는 미국의 이권이 걸린 나라를 찾아가 해당 국가의 국고를 미국 기업이 손쉽게 털어가도록 공작을 벌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경제저격수(economic hit man)’는 실제로 쓰는 말이고, 그는 국가안보국(NSA)에서 훈련까지 받았다. 세계 경제의 뒷무대에서 미국이 은밀히 벌여온 책의 이야기를 혹시 소설로 오해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향해 퍼킨스는 누누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의 이권이 걸린 개도국이나 산유국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미국측 대표가 경제저격수다. 작업 공식이 있다. 표적 국가에 민간인 신분으로 들어간 뒤 그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부풀려 예측하고, 그에 맞춰 기간산업 개발계획을 수립한다. 미국의 차관을 도입하도록 표적 국가의 정·재계 요인을 매수한다. 그 과정에서 굵직한 사업을 따내는 것은 물론 미국 기업이다. 한 나라의 국부가 매우 합법적으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퍼킨스는 국제컨설팅 회사의 경제전문가로 인도네시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에서 10년 동안 경제저격수 노릇을 하면서 미국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세계 각국의 경제를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넣었는지, 좀 점잖게 말해 그 나라들이 더 낫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는지를 생생한 논픽션으로 들려준다.
경제저격수의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경악할만한 것이지만 문제가 커지는 건 이들이 실패했을 때다. 저자는 저격수의 작전이 먹히지 않을 때, ‘자칼’이라고 부르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암살자들이 개입한다고 말한다. 자신과 친분이 있던 에콰도르의 하이메 롤도스,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 대통령은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제국을 건설하고자 서로 결탁한 미국의 기업, 정부와 은행에 반대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암살 작전도 소용이 없을 때다. 이라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만 해도 바그다드에서는 경제저격수들이 맹활약했다고 한다. 후세인이 병적인 폭군이라거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혔다거나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잔인한 행동을 했다는 소문은 별로 문제될 게 없었다. 후세인이 미국에 석유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오일 달러로 미국 기업을 고용해 이라크 전역에 사회기반시설과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사막을 오아시스로 바꾸어 놓도록 한다면 미국은 기꺼이 후세인을 지원할 참이었다. 하지만 80년대 말쯤 후세인이 저격수들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고, 암살 전술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마침 후세인이 멋대로 굴기 시작해 울려던 미국의 뺨을 때려 준 격이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것이 이라크 전쟁의 본질이다.
자신이 저격수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조직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그는 말한다. "이들은 좀 더 그럴듯한 직함을 달고 있으며, 몬산토, 제너럴일렉트릭, 나이키, 제너럴모터스, 월마트 등 거의 모든 유명한 세계적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뒤통수를 조심하라.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美의 이권개입 공식
1. 민간인 신분 개도국 잠입
2. 경제전망 부풀려 띄우기
3. 기간산업 개발계획 수립
4. 정·재계 매수 美기업 참여
5. 작업 실패하면 장애물 암살
6. 그래도 안되면 전쟁 불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