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소버린의 SK㈜에 대한 경영권 공격 이후, 경영권 방어가 다급해진 상장기업 오너들이 개인 재산은 그대로 놔둔 채 계열사를 동원해 지배권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너 일가의 실제 보유 지분과 계열사를 동원해 오너가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의 비율인 ‘의결권 승수’도 2002년 2.93배에서 지난해에는 4.97배로 높아져 지배구조가 악화했다.
8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내놓은 ‘2004년 최대주주 주식분포’에 따르면 발행 주식 기준으로 지난해 상장사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지분은 전체의 48.3%에 달했다.
이는 2003년(44.9%)에 비해서는 3.4%포인트 늘어난 것이며, 경영권 위협문제가 본격 대두하기 전인 2002년(36.7%)보다는 11.6%포인트 급증한 것이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2003년부터 야기된 경영권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최대 주주가 지배권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제는 오너 일가가 개인 재산으로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강화하는 대신 계열사끼리의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권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2002년에는 오너 일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 가운데 3분의1(12.5%) 가량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었으나,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8.7%와 9.7%로 크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오너 일가가 실질 소유권보다 의결권을 얼마나 더 행사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한 ‘의결권 승수’가 크게 높아졌다. 2002년에는 2.93배로 공정위가 정한 출자총액제한 졸업 기준(3.0배 이하)을 충족했으나,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5.16배와 4.97배로 공정위 기준에 미달했다. ‘의결권 승수’ 기준으로만 따진다면 국내 상장사 전체의 지배구조가 나빠진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 현대차 한화 등 대부분의 재벌그룹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했다. 한국증권연구원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삼성물산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SDI가 700억원을 투입해 지분을 4.52%에서 7.42%로 늘리고, 삼성전자가 삼성물산의 토지를 1,038억원에 매입키로 결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증권연구원은 ‘삼성물산 →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한화그룹도 총수가 경영권 위협에 대비, 지주회사인 ㈜한화에 대한 지배권을 늘린 것으로 평가됐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2004년 연초와 연말 ㈜한화 보유지분은 22.69%로 동일했으나, 계열사인 한화증권이 보유한 지분은 2.92%에서 4.9%로 크게 늘었다. 또 현대차그룹도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보유지분을 5.19%에서 5.21%로 0.02%포인트 늘렸으나, 계열사인 현대모비스(13.18% a 14.59%)와 INI스틸(4.86% a 5.3%)을 통해서는 각각 1.41%포인트와 0.44%포인트의 지분을 늘렸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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