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는 즐거움.’ 서양사 전공학자인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문화로 읽는 세계사’ 서문 제목이다. 과거 사실을 나열하거나 그저 외우기 좋게 정리해주거나 혹은 흥미거리를 몇 개 뽑아서 확대해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지은이는 역사에 대한 독자 스스로의 판단과 재해석을 권한다.
읽는 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달리 생각’해보도록, ‘일부러 완전한 답을 내리지 않고 여백을 주려고 했다.’ 고등학생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지만, 그 내용은 대학교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고 토론한 것이어서 진지하고 깊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문화’의 창으로 역사를 본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일궈온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둘러봄으로써 역사를 읽는다. 이 책을 구성하는 35개의 주제는 로마법에 대한 해석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문제, 괴물의 계보, 음식과 욕망, 민담과 동화 등 다양하다. 그 결과 정치·사회 중심의 딱딱한 연대기적 역사 서술과 달리 풍부한 맛을 지닌,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사책이 되었다.
이 책의 두드러진 장점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상식처럼 널리 퍼진 해석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과연 그럴까 하고 되묻거나 정정한다. ‘구석기인들이 신석기인보다 더 잘 먹고 튼튼했다’ ‘헬레니즘은 동서 문화의 융합이 아니라 그리스 문화의 확산일 뿐이다’ ‘개인주의는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라 중세 말 등장했다’ ‘노예무역은 유럽인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내부의 자발적 경제 행위였으며 신대륙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영농기술을 전해 문화 창조에 이바지했다’…. 교과서는 왜 이런 사실들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아니, 왜 달리 생각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일까.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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