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친절도 더없이 중요하지만 이를 핑계로 정의실현을 회피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대검 중수부장으로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던 안대희(50·사시 17회·사진) 신임 서울고검장의 취임 일성이 8일 검찰내부에 소리 없는 파문을 일으켰다. 안 고검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몇 가지 저의 생각을 밝히겠다"며 가장 먼저 검찰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피의자 인권보호’ 강조가 가져올 수 있는 역기능을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적극적인 가치추구를 회피한 채 무사안일과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다면 검찰에 맡겨진 어떠한 임무도 해낼 수 없음은 물론 검찰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악이 선을 넘나들 수 없도록 끝까지 진실을 찾아 사회정의를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고검의 주요 임무인 항고사건이나 송무, 공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신뢰는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지적은 김종빈 검찰총장과 박영수 중수부장 등 새 검찰 수뇌부가 잇따라 ‘피의자 인권 보호’ 및 ‘중수부 수사기능 축소’ 등의 발언을 한 것과는 시각을 달리하는 것으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속 시원한’ 일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요즘 검찰에 요구하는 것은 꼭 교통경찰에게 ‘교통정리는 하지 말고 근처에 밥 굶고 있는 사람이나 챙기라’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피의자 인권보호,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경찰수사권 독립 등의 논란에 짓눌려 현재 검찰 조직은 극도의 피로감에 빠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와중에 다음 총장 후보로 일찌감치 거론되고 있는 안 검사장의 행보에 검찰 내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는 그러나 취임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검장의 역할은 ‘원로’로서 비전을 내지 않는 게 비전"이라며 "넘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시 동기이자 차기 총장 경쟁자로 거론되는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과 이날 아침 만나 덕담을 주고받았지만, 고검장급으로 승격한 동기를 예우해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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