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쓰면서 미셸 푸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려던 것은 실재와 언표의 관계였다. 스위스 소설가 페터 빅셀이 단편 ‘책상은 책상이다’를 쓸 때 주목한 것도 사물과 기호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자 로제-폴 드루아의 관심사는 대상 자체다. 사물이란 무엇일까? ‘말은 참이거나 거짓이고,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사물은 그렇지 않다. 사물은 진실 밖에 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사물을 응시하고, 성실하게 상념하기로 했다. ‘사물들과 철학하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51가지 사물을 철학적으로 음미한 에세이집이다. 사발에서 시작해 클립 리모컨 자명종 가로등 침대 포크 기차표 컴퓨터 쓰레기통 자동차 여행가방….
"허세부리거나 반항하지 않고 명예나 무모한 영웅심으로 인한 음모를 꾸미면서 고민하지 않으며 그늘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모습에서, 평범하면서도 유용하고 충실하며 신중한 클립은 윤리의 한 얼굴." "열쇠는 자물쇠를 열고 작동시키며, 그것 자체의 능력을 준다. 연인들 각자는 상대방이 그 자신, 즉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절정을 되찾게 한다. 수수께끼 같은 사랑 고유의 단단함과 함께 말이다." "내 방 창 밑의 가로등에 나는 감사한다. 고독을 존중하며 사랑을 지키는 방법을 깨닫게 하고 그것을 말할 수 있게,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그도 말한다. 자세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고, 시각이 다를 때 일정한 시각이 포착하는 세계는 또 각각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침대는 ‘우주선이다. 누워서 보는 세계와 서서 보는 세계를 왕복하는’.
몽테뉴나 니체처럼 상념으로 철학하고, 그 속에서 또 자신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그가 뭘 얻었을까? "사물들은 당신 자신이 지내는 상태와 같다. 모든 사물이 인간의 척도이다. 당신이 너무 닫히지도, 너무 불안정하지도 않기를." ‘물건은 주인을 닮기 마련’이라는 속어의 철학적인 변주라고나 할까. 물론 사물이 넘쳐서 그렇지 못할 때가 많지만. 드루아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철학연구원이면서 르 몽드 칼럼니스트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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