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 400만 추모객 ‘작별인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8일 오전 10시(한국시각 8일 오후5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미사를 시작으로 하관식, 안장 순으로 4시간 20여분에 걸쳐 장엄하게 거행됐다. 외신들은 "20세기의 거인을 위해 현대사상 최대규모의 장례가 치러졌다"고 전했다.
장례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가대가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라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가운데 성 베드로 성당에 모셔졌던 교황의 관이 광장의 특별제단으로 운구 되면서 시작됐다. 사제들은 뒤따라 나오며 교황에게 경배했으며 고위 성직자들은 관 위에 복음서 한 권을 내려놨다. 제단 정면 왼편에는 추기경 등 600명의 성직자들이, 오른편에는 세계 100여개국의 국가원수 및 고위 인사 1,000여 명이 자리했다.
아래 편에는 각국의 조문단 2,500명, 원형 광장 안에서는 장례식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로마시내에서 며칠씩 노숙까지 마다했던 일반 순례자 30만 명이 선 채로 미사를 지켜봤다. 이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간간이 교황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베드로 성당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400만 명의 추모객들은 시내 곳곳에 설치된 최소 25개의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장례식을 치켜봤다. 27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로마 시민의 1.5배가 넘는 숫자다.
화려한 행사와는 달리 교황의 관은 삼나무 상판에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M’자만 새겨져 소박하고 꾸밈이 없었다. 관이 안치될 지하의 작은 공간도 아무런 꾸밈없는 대리석판에 교황의 이름과 1920~2005라는 생존연도만이 새겨진 수수한 모습이었다.
장례 미사는 요제프 라칭거와 김수환 추기경 등이 대표 집전했고, 대륙별 대표들의 예물 봉헌으로 시작된 성찬의 전례,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의미의 영성체 의식 등 순으로 진행됐다. 가톨릭 신자인 국가 원수들도 빵, 포도주 등 예물을 올리는 성찬의 전례에 참여했으며 이탈리아 주재 한국 대사관의 김경석 공사 내외가 한복을 차려 입고 아시아 대표로 예물을 봉헌해 눈길을 끌었다.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의 발자취를 회고하며 "마지막까지 성직자의 자세를 보였다"고 강조한 뒤 "특히 마지막 몇 달 동안은 고통 속에서도 신과 신자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칭송했다. 그는 교황이 나치 점령기 폴란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시절부터 가톨릭 수장으로 마감한 최후의 순간까지 생애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친애하는 고(故) 교황’이라고 지칭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한 것은 서품 및 나이 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묘소로 옮겨졌다. 교황청은 "8일 오후2시 20분(한국시각 8일 9시20분)에 교황의 시신이 담긴 관이 안장됐다"고 밝혔다. "땅 속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른 것으로 교황은 삼나무 관 위에 아연으로 만든 관을 짜고 다시 참나무 관으로 덮은 3중관에 입관됐다. 관 위에는 교황의 조국인 폴란드 흙이 뿌려졌다. 이 곳의 안장미사에는 교황청 관계자 등 극소수만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가 모두 끝나도 전세계 가톨릭 교회는 ‘노벰디알레스’로 불리는 9일간의 애도기간을 갖고 교황의 안식을 기원하는 특별미사를 계속해서 거행한다.
한편 이탈리아 정부는 비행기 테러를 의식해 시 주변 8km 반경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는 미확인 비행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조기 경보기도 띄웠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 교황, 사도 베드로 곁에 묻혀/ 묘소거리 불과 수 m…BBC "소망 이룬 셈"
요한 바오로 2세가 안치된 지하묘소는 초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의 묘소에서 불과 수 m 떨어진 곳이다. 교황은 베드로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소망을 이룬 셈이라고 BBC는 전했다.
교황청이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이 있는 자리는 로마제국 시절 네로 황제가 마차 경주장을 지은 곳이다. 그 곁에는 이교도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20세기 중엽 고고학자들은 무덤 가운데 하나가 베드로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층으로 이뤄진 바티칸의 지하묘소에는 역대 교황 264명 가운데 요한 바오로 2세를 포함해 148명이 모셔져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안치된 지하2층의 작은 공간은 최근까지 요한 23세를 모시던 곳이다. 가장 사랑 받는 교황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요한 23세는 최근 시복돼 교황청 본당 제단으로 옮겨졌다. 그 곁에는 직전의 교황들인 요한 바오로 1세와 바오로 6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묘소 관리인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해외순방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침 일찍 혼자 내려와 이 곳에서 기도를 했다. 교황을 고국에 묻어야 한다는 폴란드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요한 바오로 2세를 이 곳으로 모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시신을 이 곳에서 고국으로 옮긴 사례도 있다. 16세기 보르지아 교황은 훗날 고국 스페인으로 이장됐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공으로 교황이 아니면서도 이 곳에 안치돼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지하묘소를 참배할 수 있다. 교황청은 8일 "교황의 묘소는 오는 11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고 밝혔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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